새 천년기 세계 교회는 아시아 대륙을 주목하고 있다. 높은 정신 문화의 전통을 보유하고 날이 갈수록 그리스도교 교회가 활력을 띠어가고 있는 아시아 교회는 바야흐로 새 천년기 보편교회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외형적인 고속 성장에 걸맞는 내적 성숙을 이루지 못함에 따른 부작용들이 노정되기 시작했다.이에 따라 「새로운 복음화」의 과제는 한국 교회의 당면 과제로 대두됐다.
가톨릭신문은 요즈음 한국교회가 당면한 제반 위기 상황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도전의 과제에 대한 주요한 해법 중의 하나가 「토착화」에 있다고 보고 연중 기획 시리즈 「한국교회, 토착화를 향해」를 마련하고 그 첫 걸음으로 「한국교회 토착화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특별 기획을 싣는다.
「토착화(土着化)」란 본시 대대로 그 땅에 정주하는 것, 곧 땅에 뿌리를 박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토착화」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Inculturation」은 1980년대 들어서부터 사용되는 신학적인 신조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회의 선교 사명」 등 여러 교서들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면서 「토착화」를 나타내는 교회 공식 용어로 자리잡게 됐다.
이 용어는 지역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토착 문화 전통 안으로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문화와 전통을 정화하고 고양하는 한편 복음의 진리도 새롭게 표현되고 생활화되면서 교회 역시 쇄신되고 풍요롭게 되는 과정을 나타낸다.
특별히 이 용어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과 같은 비그리스도교적 문화가 지배적인 지역에서는 아직 연륜이 어린 교회의 성숙을 위한 토착화 과정과 깊이 관련된다.「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교회」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을 만큼 서구적 면모를 고수하는 한국교회이지만 토착화 노력은 이미 초대 교회에서부터 시작됐다.
선구적 구도자들, 초창기부터 착수
선구적 구도자들이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서구에서 정립된 신앙의 진리를 한국의 전통 문화와 사상에 적응시켜 온전히 정통적인 그리스도교인 동시에 온전히 한국적인 그리스도교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토착화를 비그리스도교적 문화 속에서 발생하는 복음화의 사건으로 이해할 때 토착화 작업은 한국교회 초창기부터 착수됐다고 할 수 있다.
이승훈의 「만천유고」, 이벽의 「천주공경가」와 「성교요지」, 정약종의 「주교요지」, 정하상의 「상재상서」와 정약전 등의 「십계명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교회 초기 지도자들이 조선사회의 문화 전통에 기반을 두고 토착화적인 표현양식을 통해 신앙사상의 대중화에 기여한 노력은 경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러한 독창적인 한국교회의 면모는 서양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 바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막대한 것이었지만 전통적 한국 문화와 종교 사상에 대한 선교사들의 무시 내지는 무지로 인해 한국교회는 서구교회의 이식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리고 100여년에 걸친 박해기가 끝나고 일제의 식민 통치가 지속되는 동안에도 이러한 상태가 그대로 유지됐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는 서구 교회의 축소판의 성격을 지녀왔고 초대 교회에서 활발했던 토착화 작업은 오랫 동안 아무런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그러다가 광복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최되면서 한국교회 안에서도 토착화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신학과 교회 생활 여러 부문에서 토착화 시도가 이어졌고 전통 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연구가 일부 성직자들에 의해 시작됐으며 전통 문화에 대한 이해 노력이 문화계 일각에서 시도됐다. 특히 전례 부문에서는 예식, 복장, 성음악 등에서 끊임없이 토착화 시도가 이어졌고 토착화에 있어서 가장 괄목할 만한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다.
2차 바티칸공의회후 관심 증대
1984년 한국교회가 200주년을 맞아 소집한 사목회의는 한국교회 토착화에 있어서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교회의 모든 문제를 성찰하고 미래지향적인 사목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열린 사목회의는 12개 의안을 완성했으며 거의 모든 의안들에서 토착화의 필요성과 의지, 분야별 방안들이 제안됐다.
사목회의에서 제기한 토착화 연구 필요성에 부응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산하에 「한국사목연구소」가 1987년 1월 1일에 설립됐다. 3월 「한국천주교회의 토착화 전망」 학술회의에 이어 「토착화연구특별위원회」가 설치돼 지난해 10월 28일 제58회 발표회까지 16년 동안 꾸준한 연구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아울러 「상제례 토착화 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지난해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에서 「가톨릭 상장례 예식서」가 승인됨으로써 가시적 성과를 얻기도 했다.
꾸준한 노력 이어져
교회 전체의 토착화를 위한 본격적인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교회의 각 부문에서 나름대로 토착화를 표방하는 노력들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사목연구소 외에도 토착화 연구 전문기관인 「한국 그리스도사상연구소」(소장=심상태신부)는 1991년 12월에 창립돼 꾸준한 연구 활동을 벌임으로써 국내외에서도 토착화 연구소로 인정받고 있다.
사랑의 씨튼 수녀회가 운영하는 씨튼연구원은 종교간 대화와 영성의 토착화에 앞장서온 대표적 연구기관의 하나로 종교간 대화 강좌의 내용을 꾸준하게 책으로 묶어내고 있다. 미술계에서의 토착화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가 대희년인 지난 2000년 2월 개최한 「새날 새삶 대희년 미술전」은 70년대 이후 한국 교회 미술 토착화 운동의 성과를 돌아보고 미래 지향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영성에 있어서는 한국 고유의 순교 영성에 대한 연구와 순교자 현양을 위한 지속적인 기도 운동들이 각 교구와 본당에서 이어졌고 103위 성인 탄생에 이어 제2의 시복시성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올 10월에는 가톨릭 영성학회가 결성돼 영성의 토착화에 또 다른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의구현, 농민운동, 노동운동, 민중운동, 생명문화운동, 환경운동, 종교간의 만남과 대화, 통일운동 등 다양한 부문에서 토착화의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는 영역의 활동들이 이어졌다.
필수적 과정이며 시대적 요청
이처럼 한국 교회의 요소요소에서 토착화의 노력들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지만 새 천년기에 들어선 오늘날 한국교회의 토착화는 좀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범교회적으로 본격 전개돼야 한다는 것이 토착화 연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이러한 지적은 토착화가 외형적 적응에 머물지 않는 교회의 존재 양식과 신앙 및 교회 생활 자체에 깊이 관련된 심오하고 포괄적인 것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둔 전면적인 쇄신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90년대 이래 직면한 다양한 위기와 도전들은 본격적인 토착화 노력을 시대적인 요청으로 드러나게 하고 있다. 영세자 감소, 냉담 및 행불자 증가, 청소년들의 교회 이탈, 세속주의, 생명경시와 죽음의 문화, 황금 만능주의, 정신의 황폐화 등 교회와 사회의 많은 도전들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토착화는 필수적 과제로 나타난다.
특히 보편교회 안에서 제삼천년기 선교의 주역으로 떠오른 아시아 대륙에서 한국이 참으로 아시아적이고 한국적인 교회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요구되는 시대적 요청이라는 것이다.
◆ ‘토착화’에 대한 교회 가르침
‘말씀을 환경에 적응’ 복음선포의 원칙
전례를 민족 특성.전통에 부합시킬 수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절대적이었다. 「쇄신과 적응」을 모토로 세속사회와 타종교 및 문화에 대해 긍정적, 개방적인 자세를 보여주었고 토착화의 필요성이 거론됐다.
「사목헌장」에서 교회가 초기부터 토착화 작업을 추진해왔고 여러 민족의 언어와 개념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표현했으며 말씀을 환경에 적응시키는 것이 항상 복음 선포의 원칙이었음을 지적했다.
「교회 헌장」은 선교와 관련해 비그리스도교적 문화 안에서 발견되는 선(善)을 고양시키며 완성한다고 천명했고 「전례 헌장」은 전례를 민족의 특성과 전통에 적응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평신도 교령」은 현세 질서의 쇄신에서 장소와 시대, 민족의 상황에 적응할 것을 요청했고 「일치 교령」은 계시 진리에 이르기 위한 상이한 방법과 도정들이 상호보완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의회 이후 교황들도 교서를 통해 토착화를 강조했다. 바오로 6세는 「현대의 복음선교」에서 인간성의 쇄신으로서 복음화는 곧 문화의 복음화를 뜻한다고 말했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현대의 교리교육」에서 교리교육의 방법에 대해 거론하면서 「토착화」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선교 대헌장으로 평가되는 회칙 「교회의 선교사명」에서는 토착화의 의미와 중요성, 원리를 밝혔다.
공의회와 역대 교황의 토착화에 대한 가르침의 골자는 복음 선교의 목표인 하느님 나라 건설에 있어서 인류의 삶이 이뤄지는 다양한 문화를 활용해야 한다는 결의를 표시하고 이러한 문화의 복음화를 이룩하기 위한 노력에 모든 지역교회가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공의회 이래 아시아 지역교회들은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나름대로 토착화 노력을 기울여왔다.
아시아 주교들은 1970년 마닐라에서 열린 한 회합에서 발표한 결의문을 통해 토착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결의를 표시했고 1974년 4월 대만에서 열린 제1차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에서 「현대 아시아의 복음화에 관한 성명서와 건의문」을 통해 신앙의 토착화 작업을 적극 건의했다.
1998년 개최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아시아 특별총회 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한 후속문헌 「아시아 교회」는 제4장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아시아의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선포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면서 토착화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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