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달력(전례주년)으로는 새해가 대림 제1주일부터 시작된다(9세기부터).
그러나 현대세계가 거의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태양력(1582년 그레고리오 13세 교황 때 제정된 것)을 따르면 1년-12달을 보내고 야누스 신의 이름이 붙여진 1월 1일에 시작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이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6세기경부터) 사용해 온 태음?태양력을 따른다면 2003년 2월 1일이 정월 초하루가 된다. 이렇게 1년의 시작이 각각 다른 달력들을 가지고 산다. 그렇다면 교회 달력의 시작인 대림절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무엇보다 먼저 신앙 정신으로 깨어 있을 것을 촉구하는 말씀을 듣게 된다.
죽음의 어두움을 생명의 빛으로 환히 밝히시고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시는 주님의 왕림(Adventus Divi)을 준비하는 시기가 가톨릭 달력의 연두(年頭)이다. 그러기에 온통 미래에 관심을 두면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한다.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이렇게 한 해의 시작에서 그 끝을 바라보면서 출발한다.
가톨릭 달력의 연초가 되고 있는 성탄일 전 한 주간(12월 17일부터 시작)은 과거에 오셨던 주님을 더 절실하게 생각하는 기간이다. 예언되어진 구세주의 역사적 탄생을 직접적으로 준비한다.
성탄 대축일에서 만 1주간이 되는 날, 즉 팔부축일이 되는 날이 1월 1일이다. 이 날에 동정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하느님이 세상에 오심을 크게 드러내는 축일을 지낸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다. 따라서 이 기간 안에 있는 주일은 성가정 축일이 된다. 성가정이란 의인 요셉과 성모 마리아, 그리고 구세주이신 예수님으로 구성된 가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신앙인들은 이 성가정을 가정의 모범으로 삼는다.
전례 주년을 따라 생활하자
현재 우리 나라에서 신자들의 숫적 증대는 이루어지고 있으나 실제로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무장되고 현세의 온갖 유혹과 시련에도 굳건히 견디어 낼 수 있는 뿌리 깊은 신앙 생활을 하는 신앙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냉담자가 많고 참 신앙에 잠시 몸 담았다가 타종교, 특히나 기복적인 사이비 종교로 빠져드는 신자들이 많다는 것이 그 단적인 예 일것이다. 신자로서의 의식과 깨어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가톨릭 달력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전례 주년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즉 생명의 출처와 그 향방, 그리고 완성이 어디에서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를 가르쳐 주는 달력이기 때문이다. 물떼 따라 고기잡고 철 따라 농사짓게 하는 태음력에 익숙해 있는 우리 민족에게 전례 주년의 정신을 일상 생활에 담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신앙 내용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실천적으로 살아 낼 수 있기 위해서는 꼭 사용해야 할 달력이다. 쉽게 허물어지고 흐트러지는 신앙을 우리 민족 정신 풍토에 똑바로 심고 활착시키기 위해서 창간 76년째를 맞는 본지에서 「신앙의 토착화」를 2003년도의 대 주제로 삼아 한 해를 살려고 한다. 애독자들뿐 아니라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하는 바이다.
다시 시작하자
한국땅에 천주교가 발을 들여 놓은지 200년 남짓하다. 그 중의 절반은 모진 박해의 기간이다. 겨우 생명력을 부지하기에 급급했겠지만 그 동안 그리스도교의 문화를 창출하는데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
이미 지적했지만 시간의 개념에서도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스며들지 못했다. 이승이 모두인 듯 한 생활 자세가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분명 저승이 다가온다. 한 해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점에서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하느님)를 앞당겨 생각하면서 신앙의 자세를 여며야 하겠다.
2003년도 대부분 교구의 교구장 사목 교서에서도 나타나 있듯, 신앙인의 가정과 소공동체의 형성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모든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가정 공동체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신앙인들 간의 혼인(성사혼)이 급격히 줄었고 관면혼인 마저 하지 않고 사회혼만 하는 신자하며 이혼율이 세계 어느 곳 보다 높아가고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와 세태 속에서도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성가정이 되도록 다시 시작하자.
생명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면서 특히 2004년 한국에서 열릴 아시아 주교연합(FABC) 총회의 주제가 「가정」이 되고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성모 마리아와 함께 묵주 기도를
가정을 올바르게 일으켜 세우기 위해 묵주 기도가 가장 좋은 효과를 내는 기도중의 하나(가정 공동체 61항 참조)라고 한다. 사실 온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가정은 구세주 예수님을 모시는 거룩한 가정이 될 것이고 인류의 앞날을 밝히는 표본 공동체가 될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지난 10월 16일 「동정 마리아의 묵주 기도」(Rosarium Virginis Mariae) 교서를 발표하시면서 묵주 기도의 해를 정했다. 2002년 10월(묵주 기도의 달)에서 2003년 10월까지이다. 기존의 묵주 기도인 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그리고 영광의 신비에다 「빛의 신비」를 추가했다.
인류의 빛이신 그리스도, 그 빛의 신비가 이 세상과 우리 가정 공동체에 드리워진 어두움을 몰아내고 생명의 빛이 한껏 자리잡는 공동체가 되도록 축원합니다. 애독자 모든 가정에 주님의 크신 축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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