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말 중의 거룩하다란 의미의 「성(聖)」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히브리어 「자르다」 「분리하다」란 말에서 파생된 말로서 세속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된 말인데, 이 말이 어떤 인물이나 장소, 그리고 물건 등과 함께 쓰이게 되면서 단순한 구별보다는 인물이나 장소, 그리고 물건 그 자체를 「거룩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물론 「성」의 이러한 의미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성체 성사를 통하여 빵과 포도주가 「성체」와 「성혈」로 실체변화 되듯이 성령에 의해 사람과 사물이 거룩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신앙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거룩함)」이란 말을 그것과 함께 사용되는 사람이나 사물 그 자체가 거룩한 것이다란 관점에서만 해석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다양한 견해가 있기에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이 「성」이란 개념을 다른 의미에서 해석해볼 여지는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성」이란 개념을 「하느님(초월자)과 관계된」 혹은 「하느님과 연결된」이란 의미가 더 적절치 않을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성서란 말도 책 자체가 거룩하다란 의미나 다른 책들 보다 우위에 있는 책이란 의미(종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할지라도)보다는 하느님과 관계된 내용을 적고 있는 책, 하느님과 관계된 말씀을 전하는 책이란 의미로 알아듣는 것도 무리가 없는 이해이고, 「성지(聖地)」란 말도 땅 그 자체가 거룩하고 다른 땅에 없는 신성한 기운이 있는 땅이란 의미보다는 하느님과 관계를 맺었던 땅이란 의미가 더 타당하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 자주 오해되는 「성직」이란 말도 그 일 자체가 세상의 모든 것을 뛰어넘는 무엇이거나 거룩한 무엇으로 존경받아야 하는 직업이라는 의미보다는 하느님과 관계된 일을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좀더 자연스러울 것이고, 이렇게 받아들일 때 성직이 가지는 그릇된 권위나 거짓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성물」이나 「성가」란 말도 어떤 물건이나 노래 자체의 거룩함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과 연결되는 어떤 부분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성」이란 말이 어떤 「물건」이나 「사람」에 붙여 사용될 때는 그 자체의 거룩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된 개념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 개념이란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오늘 성가정 축일을 지내는데 이 성가정이란 의미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흔히 성가정 하면 그 가정 자체의 거룩함을 떠오르기 쉽다. 그러기에 이 가정은 다른 가정에는 없는 신성함과 거룩함, 평화로움과 행복, 그리고 세상의 모든 선들이 가득한 가정이요, 그런 의미에서 성가정이거니 생각하기 쉽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성가정이란 말은 이러한 의미에서 사용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 일면을 보지만 외적으로 드러난 성가정은 세상이 불행의 요소로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가진, 너무나 평범하다 못해 불행한 가정이 바로 성가정이다. 가난, 갈등, 불화, 불효, 고통, 남편의 죽음과 아들의 죽음 등 등 외적인 조건만으로 판단한다면 행복과는 거리가 먼 가정이요, 우리가 환상 속에 그리는 핑크빛 가정이 아니라 어둠의 그림자를 동시에 가진 가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이런 모든 불행의 요소를 가진 이 가정을 교회는 여전히 성가정이라 부르고 있고, 우리 모든 가정이 성가정의 모범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이 가정이 가졌던 「모든 것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눈」, 「불행의 요소마저도 하느님과 연결시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때문인 것이다.
고통의 순간에도, 이해못할 아들의 행동과 불효의 순간에도, 혼전 임신으로 이혼의 위기에 처했을 때도,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는 사건 자체에 집착하기 보다, 이 모든 것을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받아들였고, 바로 이러한 삶이 성가정을 다른 가정과 구별짓는 가장 큰 특징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성가정 축일을 지내는 우리의 삶은 분명해진다. 그것은 가족과 우리 가정의 일을 하느님과 연결하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불평하는 아내와 사사건건 비판하는 남편, 부모의 속을 끓이는 자식과 자식을 이해못하는 부모, 그리고 우리 삶을 힘들게 하는 모든 요소와 상황들. 그 모든 것을 「그 자체」로 바라보고 거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관계된 하느님을 발견하는 삶. 바로 이 삶이 성가정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묵상해야할 성가정의 교훈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