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평화는 모든 시대의 인류가 깊이 갈망하는 것으로서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질서를 충분히 존중할 때에 비로소 회복될 수 있고 견고해진다. 그런데 여전히 세상의 완전한 질서를 거스르는 개인들과 국가들 간의 불목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관계 개선은 무력의 사용으로는 가능하지 않다』(「지상의 평화」 머리말 중).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63년, 교황 요한 23세는 새로운 회칙을 반포했다.
성 목요일인 4월 11일 교황은 「지상의 평화」로 시작하는 이 회칙을 통해 평화는 모든 시대의 인류가 깊이 갈망하는 것으로써 진리, 정의, 사랑, 자유 안에서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질서를 충분히 존중할 때 비로소 회복될 수 있고 견고해진다고 가르쳤다.
회칙은 특히 교황 자신의 평화에 대한 갈구와 염원을 매우 감성적인 어투로 담고 있으며 다른 회칙이나 교황, 교황청 문서들과는 달리 일반 신자들이 읽기에도 어렵지 않게 쓰여졌다. 인권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디서나 요구할 수 있는 근본적인 원리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한창 냉전시기이던 당시에 군비축소를 요구하고, 공산주의를 직접 비판하지 않는 가운데 갈라진 세계가 서로를 인정하고 장단점을 배우며 평등한 국가간의 관계를 통해 평화를 찾아야 함을 주장한 점이 특징이다.
바티칸 공의회 소집
요한 23세는 지난 2000년 9월 3일 제11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한 비오 9세와 함께 시복됐다. 1958년 10월 28일 선임자 비오 12세의 후임으로 교황에 피선된 요한 23세는 비오 9세와는 달리 200년 만에 최고령 교황이었다. 1960년 근세 이후의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로마의 시민들과 접촉하기 시작했으며, 로마교구 시노드를 소집하기도 했다. 1962년 10월 11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했으며, 회기중인 1963년 6월 3일 암으로 선종했다.
요한 23세는 5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 교황직을 수행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 교회의 현대화와 쇄신에 이정표를 놓았고 특히 그리스도교 일치와 타종교와의 대화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또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3년에는 「어머니요 스승」 「지상의 평화」 같은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담은 회칙을 발표, 세계 평화와 정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회칙의 역사적 배경
회칙이 반포된 역사적 배경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당시 세계는 깊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과학과 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인류는 진보에 대한 큰 기대를 품고 20세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20세기가 시작된지 불과 60년도 안돼 세계는 두 차례의 엄청난 전쟁을 겪으면서 유례없는 대학살극을 목격했으며 파괴적이고 무자비한 전체주의 체제와 세계가 둘로 나눠져 대량 학살 무기를 서로에게 겨눈 채 끊임없는 대립과 대결의 상황에 서 있었다.
「지상의 평화」가 발표되기 불과 2년 전인 1961년에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다. 이 장벽은 도시를 둘로 나눴을 뿐만 아니라 지상의 도시를 이해하고 건설하는 방식도 갈라 놓음으로써 세상과 인류를 절반씩 나누는 상징적인 존재로 세워졌다.
또 회칙이 반포되기 불과 6개월전, 로마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최되고 있던 때 냉전에 빠져 있던 인류는 핵전쟁 직전까지 가는 공멸의 위기까지 겪어야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로 자칫 전세계가 핵전쟁으로 미래를 제거할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던 것이다.
이처럼 전혀 세상이 평화와는 담을 쌓고 도무지 평화는 미래의 희망이 아니라고 생각한 바로 그 시기에 나온 것이 교황 요한 23세의 「지상의 평화」였던 것이다.
▲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회칙 「지상의 평화」가 제시하는 평화의 조건과 원칙들은 당연히 유효하며, 작금의 국제 분쟁 상황을 생각해볼 때 더욱 그 가치가 빛나고 있다.
도덕에 기반한 평화
「지상의 평화」는 머리말, 결론과 함께 모두 5부로 나눠진다. 제1부 「공동생활의 질서」는 인간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통찰하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양도할 수 없는 인간 권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일깨운다. 제2부 「각 정치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과 공권력과의 관계」에서는 권위와 공적 권력의 목표는 공동선의 실현임을 지적하고 도덕적 기반 위에서의 평화를 제시한다. 제3부 「정치 공동체들간의 관계」에서는 권리와 의무의 주체인 정치 공동체들이 진리와 정의에 입각해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정치적 망명, 무기, 소수 민족, 자유 등 다양한 관련 주제들을 다룬다. 제4부 「인간과 정치 공동체들의 세계 공동체에 대한 관계」는 국제 분쟁을 조정하고 협력하는 국제적 공권력에 대해 언급한다. 마지막 제5부 「세계의 평화를 이룩하는 가톨릭인들」은 평화의 문제가 결국은 사람들의 문제라는 입장에서 가톨릭인들의 소명과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개인들 사이의 상호 관계, 시민들과 정치 공동체들 간의 관계, 그리고 개인들, 가정들, 종교 단체들, 국가들간의 관계, 다른 한편 세계 공동체간의 관계들을 바르게 건설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고상한 과제는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질서 안에서 참된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지상의 평화」 결론 중에서).
◆ 끝없는 지구촌 분쟁
이념.민족.인종.종교.사회 갈등으로
무차별 테러.인질극.내전에 기근까지
인류 역사는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이다. 선의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촌의 평화는 요원해 보인다.
600만의 유다인 학살을 포함해 6천만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의 가슴 속에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했다. 하지만 곧 다시 인류는 냉전 시대로 들어섰고 그 대립의 와중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또다시 희생됐다. 그 후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로 냉전시대가 막을 내렸지만 부산물로 생겨난 민족주의는 인종, 종교와 한데 얽히면서 크고 작은 국지적 분쟁을 야기했다.
아프리카에서는 1800년대 제국주의 국가들이 임의로 그어놓은 국경선에 종족간 분쟁이 뒤얽히면서 대륙 전역에서 분쟁이 일어났다. 내전과 쿠데타 등 불안정한 정치 상황으로 인한 분쟁이 빈발했다. 앙골라 내전에서 19년간 50만명이 숨졌고 수단에서는 15년간 그 3배인 150만명이 희생됐다. 우간다, 차드, 라이베리아, 모잠비크, 소말리아 내전 등과 수단의 기근까지 아프리카 대륙의 비극은 말로 할 수 없다.
르완다에서는 불과 3개월만에 750만 인구 중 50만명이 희생되고 200여만의 난민이 발생했다. 소말리아에서는 지난 92년 한해에 35만명이 내전과 가뭄으로 사망했고 반정부조직의 무장투쟁이 두드러졌던 모잠비크는 반군들이 어린이들을 납치, 군사 훈련을 시켜 가족을 살상케 함으로써 200만명의 국민들이 정신적으로 파탄을 격고있다.
아시아 지역의 분쟁은 대부분 종족간 불화에 종교문제가 겹쳐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89년 소련군이 완전 철수하고 92년 9개 무자헤딘 세력이 14년간에 걸친 내전 끝에 친소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연립정부를 세웠으나 또다시 세력 다툼을 벌이는 통에 여전히 불씨는 살아있다.
인도는 카스트제도로 인한 사회갈등과 빈부격차가 분쟁을 격화시키고 있으며 이웃 파키스탄과도 분쟁상태로 핵전쟁의 위험이 우려되기까지 한다. 캄보디아는 20년이 넘는 내전으로 35만여명이 난민이 됐고 93년 이래 50여만의 캄보디아내 베트남인들이 보트피플로 바다를 떠다닌 바 있다. 티베트도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면서 10만에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최근 독립을 이룬 동티모르가 15만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냈다. 아프가니스탄은 23년간에 걸친 독립전쟁으로 150만명 이상이 죽고 50만명이 난민이 됐다.
중동은 수년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 협정이 맺어지기도 했지만 평화 정착까지는 요원하다. 지난해에는 분쟁이 격화돼 자살 폭탄 테러가 줄을 이었으며 무장 팔레스타인을 색출하기 위해 베들레헴의 예수성탄성당을 이스라엘군이 수개월 동안 봉쇄하기도 했다.
9?11테러 이후 세계는 극도의 긴장 상황으로 들어섰다. 대규모 테러가 이어져 발리에서는 지난해 10월 폭탄 테러로 180여명이 사망했다. 미국과 영국 등은 주요한 테러 지원국으로 지목한 이라크를 무력공격하기 위한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러시아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체첸 반군은 지난해 10월 모스크바의 한 오페라 극장에서 1000명을 볼모로 인질극을 벌인 뒤 진압됐으나 그 과정에서 인질범 전원과 인질 129명이 희생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