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끝마무리에서 이같이 길고 진솔한 편지를 드리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서울대교구 주보의 「간장종지」에 연재(2001.1∼2002.12)했던 주일복음 묵상글을 모아 최근 자신의 열 네 번째 시집 「내 안의 광야」(바오로딸 열린/124쪽/6000원)를 펴낸 시인 홍윤숙(데레사?78)씨.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만난 시인은 『이번 시집에 담긴 80여편의 글은 내 생애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받은 귀한 선물』이라며 첫 말문을 열었다.
『55년간 시를 써오면서 평생 어느 시잡지에도 연재라는 것을 한 적이 없어요. 시간에 묶여 구속받기 싫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두 해를 꼬박 그런대로 마치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이 일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큰 힘에 이끌려 간 것 같아요』
시인은 「복음 묵상글을 쓰다 보니 고달픔이 어느덧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행복하고 보람있는 시간이 되어갔다」고 회상했다.
『글을 연재하면서 하루 스물 네 시간 예수님을 내 몸 안에 모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마음 한 구석에 그 분의 자리를 마련한 곳, 그곳이 결국 「내 안의 광야」였습니다』
이번 시집에 담긴 글에는 모든 시적인 기교를 벗었다고 강조하는 홍시인. 그분과의 대화엔 고도의 비유나 기교가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그는 『일곱 줄 또는 여섯 줄에 담아낸 소박하고 미숙한 글들이지만, 오직 가슴에 고여 넘치는 맨살의 육성을 그대로 퍼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내 안에 아무도 모르는 광야 하나 / 집도 마을도 인적도 없는 광야 하나 있습니다 // 눈물나게 슬프고 외로운 날 / 나는 내 안의 광야로 찾아갑니다 // 가서 아무도 모르게 광야에 엎드려 나를 던지면 / 어느덧 내 마음 하얗게 눈 덮인 설원이 되고 / 이 세상 슬픔, 고통, 외로움이 한 떨기 꽃으로 살아납니다』 (본문 81쪽 「광야」 전문).
몇 년 후면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 지금껏 900여편에 달하는 시를 남긴 홍 시인은 이미 한국 문단의 최고 원로에 속한다. 하지만 그는 『나이듦 자체도 은총』이라며 『그 안에서 오는 여유와 평화를 느낀다』고 말했다.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저의 시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겠지만 「시」가 나를 떠나가는 그 날까지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시 20여편을 이 시집에 엮지 않고 고이 남겨 두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15번째 시집을 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지난 1947년 「문예신보」로 등단한 홍시인은 그동안 가톨릭문인회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시인협회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한민국 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장식론」, 「타관의 햇살」, 「마지막 공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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