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은 「성령 강림 대축일」이 부활 시기를 마감하듯이 성탄 시기를 마감하는 축일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그리스어로 에피파니아(Epifania)라고 하는데 이는 「드러나다」라는 뜻으로 「유명한 존재가 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왕이나 황제의 도착(오심)과 관련되어 있다. 예수께서 공적으로 세상에 나타나시고,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니라 동방의 세 임금으로 표상되는 전 세계 모든 민족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것을 기념해 붙인 말이다. 이밖에도 이 용어는 신의 발현 또는 기적적인 신의 개입을 가리키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예수님의 탄생은 구세주의 탄생을 알아차리고 기뻐하며 경배하려는 동방박사들과 오히려 불안에 떨고 제거하려는 헤로데의 무리라는 서로 다른 두 부류의 존재를 발견하게 한다.
원래 1월 6일은 로마에서 태양의 열로 만물을 녹이며 세상에 봄을 가져다주는 신의 신비로운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동녘에 새로 떠오르시는 예수님의 탄생 축일이 이 날을 대체하게 된 셈이다. 로마 교회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율리우스 달력으로 계산한 결과 이전에 이방인들이 사용하던 1월 6일이라는 날짜가 그리스도교의 달력에 의하면 12월 25일이 된 것이다.
이 대축일의 기록은 서기 361년에 갈리아 지방에 살던 암미아노 마르첼 리노라는 사람의 글에서 처음 등장한다. 초대 교회에는 이 대축일에 대한 전승이 다양했는데 여러 경로를 거쳐 오늘날 서방교회에서는 이 축일을 성탄과 분리해서 지내고 있다. 그러나 동방교회의 많은 지역교회는 지금도 이 날을 성탄으로 지내고 있다.
공적으로 행해진 대축일이 여러 전승으로 전해져 온 것은 공현일을 어떻게 보는가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즉, 탄생으로 보아야 한다는 곳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난 첫 사건이 세례이기 때문에 주님의 세례를 공현이라고 보는 곳도 있다. 또한 이집트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신적 능력을 발휘한 첫 사건인 가나안의 혼인 잔치를 공현일로 보기도 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님의 탄생과 동방박사들의 경배로 보았다. 그런가 하면 시리아와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탄생과 동방박사들의 경배와 세례를 모두 포함하기도 했다.
이런 여러 지역 교회 전승의 다양성은 다른 교회의 영성을 풍요롭게 하였으며, 공현 대축일은 예수께서 당신의 인성만을 드러내시거나 신성만을 드러내시는 것이 아니라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드러내시는 축일이라는 공감대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했다.
한국교회에서는 교회법 제1246조 2항에 따라 이 대축일을 주일로 당겨서 지내지만 유럽에서는 1월 6일이 아예 공휴일로 지정될 정도로 깊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며 교황청도 1월 6일을 고정 축일로 지내고 있다.
공현 대축일에는 성탄 때와 달리 특별한 예식을 하지 않는다. 성탄시기 안에 들어 있으면서 예수 성탄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성탄이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을 말한다면, 공현은 「그분의 탄생을 이방 민족들 모두에게 밝히 드러내 보이셨다」는 의미가 강조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날이 되면 이방 민족들을 대표하는 동방박사들의 형상을 구유에 설치하는 것이다. 세 동방박사들은 우주의 창조주를 경배하는 모든 백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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