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의 한국 진출은 초대 수원교구장 윤공희 주교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수녀회가 진출하던 1960년경 한국 사회는 전쟁 복구 처리만 마무리 한채 식량과 약품및 물자 대부분을 외국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수원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병원은 고사하고 진료소조차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1963년경 윤공희 주교는 보다 원활한 선교를 위한 병원 사도직 수도회 필요성을 절감하고 주로 독일에서만 활동 중이던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에 한국 진출 의사를 타진했다.
선교사업을 모색 중이던 수녀회 측에서도 윤주교의 초청을 쉽게 승낙하게 됐고 마침내 1964년 수녀회는 수원시 팔달구 지동 93번지 일대 수녀회 부지를 매입한 후 지원자를 모집 그해 11월 6일 9명의 첫 한국인 지원자들이 양성을 위해 독일 모원으로 떠났다.
또한 1965년에는 독일에서 세명 수녀가 입국, 수원지역에 자선병동을 갖춘 병원을 짓기로 결정했고 이로써 성 빈센트 병원이 세워지게 됐다.
1971년 한국 지부로 승격된 수녀회는 관구 제도가 없는 독일 모원으로 부터 독립, 1990년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로 교황청인가를 얻었으며 설립 총회를 열어 교구 설립 수녀회로 성장하게 됐다.
수녀회의 사도직 활동은 크게 의료 사업과 사회복지 사업으로 나눠진다.
대표적인 의료사업으로서는 1967년 개원한 성빈센트 병원을 운영하는 것으로 이 병원은 수녀회가 한국 안에서 빈센트 성인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제일 먼저 시작한 사도직이다.
가톨릭대학교 제5 부속병원인 성빈센트 병원은 가톨릭 중앙의료원 산하 병원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개원 당시에는 자선의료를 실시했으나 1977년 전 국민의료보험이 시작되면서 무료진료는 감소, 이 보다는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환자들의 경제적 기타 어려움들을 지속적으로 돕고 있다.
1999년 신축 병동이 마련되면서 호스피스 제도를 마련한 성빈센트 병원에는 현재 50여명 수녀가 봉사하고 있다.
사회복지 사업으로는 양로 복지시설인 「성녀 루이제의 집」, 「사강 보금자리」, 「성녀 안나의 집」과 미혼모 시설인 「생명의 집」, 청소년 사도직 「성빈센트 청소년회」 운영 등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들어 빈센트 성인의 자비 정신을 좀 더 폭넓게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모색하던 수녀회는 1992년 경기도 화성에 「성녀 루이제의 집」을 열었고 이어서 「사강 보금자리」 운영을 맡게됐다.
「생명의 집」은 낙태 위험에 처한 미혼모와 임산부를 아무 조건없이 받아들여 한 생명이라도 살려보려는 뜻으로 마련됐고 성빈센트 병원과 연계, 임산부들의 산전 산후 관리 및 출산 후 간호, 어린이 입양문제까지 주선하고 있다.
「성 빈센트 청소년회」는 청소년 사도직 수행을 목표로 수녀회가 창단한 조직. 중고등 학생 대상의 이 청소년회는 성 빈센트 영성을 갖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 및 단체와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와함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는 수원교구 무료급식소인 「사랑의 집」과 재소자들을 위한 교정사목, 교구 사회복음화국에 수녀들을 파견하고 있고, 군종교구에서도 사도직을 맡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