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 욕구 가운데 하나가 권력에 대한 욕구입니다. 인간은 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때로는 권력을 획득하는 방법으로 또 때로는 낮은 자리에 서기를 거부함으로써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킵니다.
권력을 취함으로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직접 어떤 권력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된다던가 아니면 판검사가 됨으로써 자신의 권력욕구를 채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상대적으로 큰 만족을 주기는 하지만 애석한 것은 권력은 모든 사람에게 쉽게 개방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차선책으로 간접적인 방법을 택합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관계를 맺음으로 권력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판검사나 단체장 등 주위의 권력자들과 어떤 형식으로든 관계를 맺음으로써 우리 내면에 뿌리박고 있는 권력 욕구를 충족시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학연 혈연 지연 등도 넓은 의미의 권력욕구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남녀의 심리를 분석해 보면 남자들은 대체로 직접적인 방법을 선호하는 반면 여자들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권력욕구를 충족시키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합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대통령의 아내가 되면 그 사실이 자랑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 사실에서 만족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반면 아내가 대통령이 된, 대통령의 남편은 그 사실이 자랑스러울 수는 있을지언정 남편에게 만족한 삶을 선사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남편의 인생에 하나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남녀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아내들일수록 남자들의 이러한 심리를 이해하고, 남자들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상하관계라는 잠재의식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는다면 가정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 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권력욕 때문에 필연적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거부와 반항 그리고 불복종 등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욕구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또한 인간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면 혹시 그들처럼 낮게 평가받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나 사회적인 약자들을 무시하고 천대함으로써 자신은 그들과 다르고, 그들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은연 중에 과시합니다.
대통령 선거 이후 각당이 개혁특위를 열고 정치개혁과 더불어 인적청산을 부르짖고 있는데 이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나는 너희들 같이 부패된 사람도 아니고 책임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승리는 자신의 것으로 패배의 아픔은 너의 책임으로 돌려 자신의 입지를 마련하겠다는 교묘한 권력욕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방법으로는 인간 안에 자리잡고 있는 권력욕을 결코 충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일까요? 바로 오늘 복음이 여기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합니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로서 복음은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해 줍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다. 물론 이 사실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요한의 세례가 죄사함을 위한 회개의 세례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 사실은 새로운 의문을 가져옵니다. 왜냐하면 회개의 세례란 죄인들이 받아야하는 세례이기에 굳이 죄 없으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왜일까요! 아마 그것은 죄인들인 우리 인간들, 요한의 세례를 받아들였던 당시의 사회적인 약자들과 함께 하겠다는 당신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함이었을 것입니다. 어느 주석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죄인들과 연대하시는 하느님」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왕이요 메시아이신 그분이 천하디 천한 죄인들, 회개해야할 죄인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 아니 그들과 똑같은 처지로 자신을 낮춘다는 사실은 높은 곳만을 탐하는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높은 곳만 바라보고 있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동시에 세계를 지배하고도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 인간의 끝없는 권력욕구를 어떻게 충족시켜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건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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