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 후에도 어렸을 때 본 만화 영화나 동화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위로가 필요할 때, 조금 행복해지고 싶을 때, 그럴 때는 『아무개와 아무개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는 말에서 왠지 고단한 마음이 풀리곤 한다. 온갖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통념들, 종교적 윤리관 등이 그저 공론(空論)에 머물 뿐, 내 삶을 구원으로 이끄는 구체적 힘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을 직시하게 될 때, 더 더욱 우리는 선량하고 단순한 무엇에 간절한 마음을 담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
지금까지 구약성서의 맥을 따라온 우리는 이제 「성문서」 부분을 살펴볼 순서에 와 있다. 성문서는 어쩌면 위에서 언급한 시각에서 접근할 때 더 잘 이해될 수 있는 책들이다. 어른들에게도 삶의 복잡한 이면들을 단순하고 편안한 시각에서 풀게 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필요하듯이, 이스라엘에게도 모세오경의 강력한 율법 규범들이나 예언서의 실랄한 심판 신탁들이 아닌, 그저 단순한 일상의 자리에서, 빵을 구울 때, 밀가루를 사러 갈 때, 손가락에 난 상처에 약을 바를 때, 행주를 깨끗이 빨아 개켜 넣을 때, 그런 사소한 순간에 마주치게 되는 하느님을 더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순간들이 있었던 것이다.
즉, 더 이상 거창하고 장엄한 「출애굽의 하느님」, 「시나이 계약의 하느님」 같은, 과거 역사의 어느 자리에 고착되어 계신 하느님을 회상하기보다는, 일상의 한 가운데서 그들과 언제나 마주하고 계시는 현재적 하느님을 피부로 체험하고 이것이 곧 구원임을 깨닫기에 이른 것인데, 이는 유배라는 고통과 죽음의 시기 이후 그들이 갖게된 하느님 관(觀)에 대한 새로운 이해였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의 변화와 함께 저술, 편집된 책들이 바로 「성문서」이다.
이제 우리는 성문서 각 권의 내용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성문서 전체에 대한 개관」을 몇 주에 걸쳐 시도하게될 것이다.
결과를 모른다는 것은 모든 시작이 가지는 딜레마인 동시에 희망이다. 앞으로 전개될 성문서 연구가 지금, 여기, 우리 각자의 삶 안에 현존하시며 말을 걸어오시는 하느님을 마주하게 되는 소중한 결과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구약성서는 내용상 크게 세 영역으로 구분된다. 이 구분을 일반적으로 「타나크」(TaNaK)라고 하는데, 이 말은 ①) 율법서(=모세오경)를 가리키는 「토라」(T)와 ②) 예언서를 가리키는 「느비임」(N) 그리고 ③) 이제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성문서, 「크투빔」(K)의 이니셜을 따서 만든 전문용어이다. 따라서 「성문서」란 「율법서」와 「예언서」를 제외한 구약성서의 나머지 부분을 통칭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율법서」와 「예언서」는 이 세상을 「이스라엘」과 「비이스라엘」로 구분하지만, 지혜문학 작품들을 위주로 하고 있는 「성문서」는 전 인류를 「지혜로운 자」와 「지혜롭지 못한 자」로 구분한다. 이러한 구분은 모세오경과 예언서 안에서 막대한 위상을 떨치던 「선민(選民)의식」이 상당한 거리 후퇴하고, 대신 일상 안에서의 구원을 모색하던 실제적 지혜가 이스라엘 안에 전적으로 추구되기 시작했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성문서」는 하느님께서 「가르침」(율법서)과 「말씀」(예언서)으로 전달해주신 당신 계시에 대한 「이스라엘 측의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성문서에는 다양한 양식(genre)과 형태(form)가 등장하는데, 각기 다른 삶의 자리와 성향을 갖고 있는 인간들이기에 응답들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문서 안에는 시, 잠언, 속담, 사랑의 노래, 역사적 서술, 철학적 사색 등 매우 다양한 문학 양식들이 모여 있고, 이러한 의미에서 학자들은 성문서를 일종의 「선집」(選集, collection )이라고 규명하고 있다.
김혜윤 수녀님은 미리내 성모성심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석사 학위 S.S>L)과 우르바노 대학(박사 학위 S.T.D)에서 구약 성서를 전공하였습니다.
현재 서강대학교 대학원, 가톨릭대학 교리신학원, 수도자신학원 등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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