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인간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우리는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진보가 항상 또다른 소중한 가치를 희생시키고 포기한 결과에 터 잡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오만에 젖어 자신의 정체성을 묻지 않음으로써 과학은 윤리적 불감증에 빠져들고 도덕성을 상실하고 있다.
인간 생명의 시작은 남녀의 결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보편적 가치로 인정돼왔다. 그런데 인간 복제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났고 인간 생명의 출현이 인간의 조작, 개입에 의해 가능한 상황에 직면했다.
복제양 돌리 이후 인간 복제 실험이 시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우리의 이러한 신뢰는 산산조각났다.
복제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보도된 후 인간 복제 실험의 금지 또는 저지를 위한 입법화와 제도적 장치의 마련, 위원회 또는 기구의 구성과 같은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 제시는 인간 복제 실험을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불충분하다.
우리는 인간 복제 실험과 관련해 제도와 법규의 제정도 시급하고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과학자들의 건전한 양식과 건강한 상식에 호소하고자 한다. 인간을 복제하는 어떤 실험도 즉각 그리고 조건없이 중단할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이러한 실험은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부도덕하고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미명 아래 다른 인간을 그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과학의 자유와 자율성을 침해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나 과학 역시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자유와 자율성을 담보 받을 수 있다.
자유와 자율성을 위해서는 그에 대한 책임감과 건전한 양식과 건강한 상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공명심이나 상업성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한 건전한 양식과 건강한 상식을 기대할 수는 없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존엄성을 목표로 삼을 때 그 도덕성도 확보할 수 있다. 인간 존엄성을 파괴하고 말살하는 과학 기술을 결코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과학기술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여러 가지 난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자는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문제는 방법이다. 한 생명을 치료하기 위해 타의에 의해서 또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는 방법에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이룬 업적과 결과에 자만하지 말고 자신의 정체성을 거듭 확인하는 철학적 고뇌를 해야 한다.
할 수 있다고 아무 것이나 해서는 안된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음」에도 그 「할 수 있음」을 스스로 자제하고 통제하는 힘을 키워낼 때 그리고 「할 수 있음」을 필요한 경우 기꺼이 포기하는 용단과 결단을 내릴 때 과학은 도덕성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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