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최종 논문제출시 지도교수는 참으로 엄격하게 검토한다. 내 경우도 서너번 논문재작성 지시를 받을 정도였다. 또 미국의 교수들은 무척 열심히 공부한다. 한번은 논문을 제출하니까 지도교수가 무응답이라 자세히 살펴보니 졸고있었다. 잠이 모자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나도 교수님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박사코스를 통과하자 지도교수가 당장 「파더 리」에서 「닥터 리」로 나에 대한 호칭을 고쳐 불렀다. 그러나 막상 박사가 되고나니 『고국의 내 동기, 선?후배 사제들은 열심히 사목하는데 6년 공부를 더한 내가 과연 그들보다 더 많이 아는가?』하는 의혹이 생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공부한 것은 결국 「인성문제」였다. 내가 배운 것은 교수들과의 인간관계, 그들의 학구적인 훌륭한 모습이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책임감있는 교수들의 삶의 모습이 바로 내가 가장 크게 배운 점이다. 특히 내가 전공한 「사회학」분야가 바로 그런 점을 일깨운 학문이었다. 뉴욕 포담대학 사회학 석사 및 박사과정을 졸업한 나는 지금도 미국유학 시절을 떠올리면 기억이 생생하다. 석사학위 논문은 1년 6개월에 걸쳐 「한국문화에 적응하는 외국선교사」 즉 토착화 문제를 다뤘고, 3년이 소요된 박사학위 논문은 「사회환경(여건)과 가톨릭신앙(SOCIOLOGICAL IMPLICATIONS OF RELIGIOUS CONVERSION TO CHRISTIANITY IN KOREA」이다. 내 전공학문은 귀국후 지금까지 강론을 할 때나 성직자로서 활동하는 동안 많은 보탬을 받았다.
▲ 1956년 뉴욕 성 아녜스 교회에서 스펠만 추기경과 환담하고 있는 필자(왼쪽).
또한 사회학은 「사회생활이란 결국 인간관계」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손가락 하나가 다치면 몸 전체가 아프듯이 사회구성원 각자는 결국 동고동락하는 존재다. 우리 사회의 한 부분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 파장은 단순히 그 사건에만 머물지 않고 전체 사회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학자는 어린 아이 하나가 배고파 울면 그 파장이 전 우주에 퍼진다고 말한 그대로다.
바로 이런 점에서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 하나를 조심하고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무심히 내뱉은 말 한 마디가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국 어떤 사람이든지 사람이 가장 가치있고 고귀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까지 말씀하셨다.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려면 목숨까지 버려야 하는 엄청난 자기 희생이 따르지만 이 사랑이야말로 엄청난 파워가 있다. 아무리 미워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끝까지 사랑하라. 사랑하면 결국 이긴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 그대로다. 예수님은 세속적으로 볼 때 가장 실패한 사람, 개죽음을 당한 듯하지만 결국 세상을 이기신 분이다. 사랑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
이와 반대로 공산주의 힘의 바탕은 「증오」다. 칼 막스나 레닌의 공산주의 이론서에 절대 쓰지 않는 단어가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침투할 때 가장 첫 번째로 박해하는 것이 종교다. 계급투쟁의 결과는 페허다. 이것을 막으려면 사랑밖에 없다. 공산주의는 미움이 자꾸 번져나가게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계층간의 차별을 부각시켜 화풀이를 하게 하는 것이다. 화풀이 안하도록 하는 것이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