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시문집의 제목이 비유하듯 과일 망신시킨다는 모과처럼 부실한 시인이지만, 그러기에 오히려 삶이 심신으로 더불어 악전고투의 심연 속에 있었다 하겠고, 그 응어리진 사연이 하도 많아서 모과나무의 무성한 옹두리를 방불케 한다』
우리 시대의 큰 시인 구상(세례자 요한.84) 선생이 자신의 문학총서 제1권인 「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홍성사/392쪽/1만5000원)를 펴냈다. 이 책은 한평생 선비와 같은 올곧은 삶을 살아온 선생의 일대기를 시와 산문으로 엮어낸 자전 시문집이다.
「모과 옹두리」는 모과의 울퉁불퉁하고 모난 부분을 지칭하는 말로, 삶의 온갖 굴곡을 다 겪어온 선생 자신의 인생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태질하는 시대를 상처투성이로 살아낸 노시인이지만, 선생이 소개하는 글밭 속에는 평생 마음 가난한 삶을 산 예술가의 내면 풍경이 생생히 느껴진다.
특히 와병중인 노시인이 심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손수 편집하고 감수해 엮었다는 점에서 이번 출간은 더욱 뜻깊은 의미를 지닌다.
책에는 선생이 「시」 세계에 처음 빠져들던 젊은 시절부터 80년대까지 현대시학지에 50여회에 걸쳐 연재한 90여편의 연작시에 근작 10편을 더해 모두 100여편의 시가 담겨있다. 또 여러 문예지에 발표됐던 산문들과 오상순, 이중섭, 이기련, 김익진, 김광균, 마해송, 박용주, 중광 스님 등 선생이 친분을 맺었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담은 「내가 만난 기인일사」도 함께 실려있다. 선생이 책의 서문에서 『이 시선집은 나의 생활사인 동시에 정신사요, 나아가서는 현대사의 한단면』이라고 밝혔듯이, 시집 곳곳에서는 선생의 일대기와 시인으로 걸어온 반세기의 세월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시에 매달린 지 50여 년 / 이건 원고지를 마주하면 / 노상 백지일 따름이니 / 하도 어이가 없어 / 남의 말하듯 하자면 / 길 잘못 들었다 / …(중략) / 하지만 이제 어찌하랴 / 돌이킬 수도 그만둘 수도 없고 / 또 결코 뉘우치지도 않는다』(연작시 99).
노시인은 평생 시를 쓰며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 눈물겹도록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또 선생 스스로 자신의 사상을 가장 잘 담은 시라고 평한 「오늘」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상문학총서」는 이번에 출간된 첫 권 「자전 시문집」에 이어 「연작시와 단시집」, 「희곡」, 「시나리오」, 「서간문」, 「시 창작론」, 「신앙시」, 「신앙에세이」, 「금석문」 등이 2005년까지 10여권의 전집으로 나올 예정이다.
1919년 서울 이화동에서 태어나 함경 원산에서 자란 구상 선생은 일본대학 종교과를 거쳐 북선매일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논설위원 등 20여년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프랑스에서 뽑은 세계 200대 문인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발탁된 구상 시인은 월남 후 「연작시 강」, 「초토의 시」, 「그리스도 폴의 강」 등 10여 편이 넘는 시집과 수상집, 수필집을 냈으며, 대한민국문학상.대한민국예술원상.국민훈장.동백장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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