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마음의 기도는 말을 삼가고 고요를 추구하는 특징을 띄고 있으며 온전한 묵상(meditatio)에 비해서 다양한 정신 활동을 벗어나서 단순한 기도행위(관상기도: contemplatio)로 건너가려는 경향, 즉 침묵과 단순함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이 강조되는 단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기도 역시 묵상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역시 마음의 기도(oratio mentalis)는 어떤 면으로는 본래적 의미의 관상과는 구별되기 때문이다.
묵상은 관상적(contemplative) 기도 형태의 하나로서 일반적으로 의지와 지성의 여러 가지 특별한 행위들을 통해 하느님 뜻을 이해하고 탐색하는 관상 형태를 말한다.
묵상의 어원학적 의미는 「영의 반성(숙고 성찰)」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이는 군인들이나 연주자들의 「연습과 반복」에 상응하는 것이다. 귀로 들은 것, 눈으로 본 것, 기억된 것을 동화 융화하기 위한 작업이며 하나의 생각을 완전히 꿰뚫기 위한 숙고와 저작(詛嚼)을 말한다. 이같은 동화 작업을 그리스도교 신앙 내용에 적용할 때 그리스도교적 묵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묵상과 그리스도교적 삶
묵상은 영을 신앙의 신비에 동화하도록 준비시킨다. 이는 오직 하나의 준비를 의미하는 것이다. 묵상활동을 어떤 기계적인 방법으로 얻어지는 어떤 효과와 관련시킨다거나 묵상하는데 있어 영을 사용하는 강렬함 정도에 따라 그만큼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일 것이다. 하느님은 자신의 선물을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허락하신다.
그러나 한편 성령이 묵상 활동 자체 안에서 활동 못할 이유가 어디 있으며 왜 영과 마음의 자발성 안에서만 오직 일정한 방법으로 활동하겠는가.
성령의 전적인 자유를 조금도 손상하지 않는 가운데 기도 영역에서 우리가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묵상의 연습이다. 즉 영성지도자의 역할은 무엇보다 묵상자의 용기를 북돋우고 그의 기도생활에 있을 수 있는 장애물들을 피하도록 도움을 주는데 있는 한편 성령이 뒤에 관상으로 이끌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 묵상은 관상적 기도 형태의 하나로서 의지와 지성의 여러 가지 특별한 행위들을 통해 하느님 뜻을 이해하고 탐색하는 관상형태를 말한다.
■ 묵상기도 배경
중세 수도자들은 전례적 기도에만 오직 전심하지는 않았다. 또한 개인적인 마음의 기도(oratio mentalis) 도움을 받아 신앙의 신비와 동화하려 하였다. 이들 마음의 기도는 항상 「성서 독서(lectio divina)」에 기초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묵상은 복합적 관상 행위 속의 한 순간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체르토사 수도회의 수사 귀고 2세(Guigo II, il Certosino)는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독서(lectura)는 성서에 대한 영의 사용이요 묵상(meditatio)은 이성의 도움을 통해 시도하는 숨겨진 진리에 대한 주의 깊은 탐구이며 기도는 악에서 떠나고 선을 구하기 위한 하느님을 향한 마음의 헌신적인 긴장이며 관상은 영원한 기쁨의 맛에 빠진 영혼이 갖는 하느님께로의 거양(擧揚)이다. 독서는 복된 삶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달콤함을 탐구하며, 묵상은 그 달콤함을 찾아 얻으며, 기도는 그것을 청하며 관상은 그것을 맛본다. 이는 「구하라 찾을 것이요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는 주님의 말씀 자체를 말한다. 즉 「읽으면서 구하라, 묵상하면서 찾아 얻으리라, 기도하면서 두드려라, 관상을 통해 들어가리라. 독서는 음식을 입에 넣으며, 묵상은 그 음식을 잘게 씹으며, 기도는 그것을 맛보며, 관상은 기쁨으로 가득 채우며 원기를 주는 맛 자체이다』
묵상은 이런 면에서 독서와 기도 사이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독서와의 관계에 있어서 묵상은 영으로 하여금 텍스트의 뜻을 심화하고 그것으로부터 영양을 취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노작(勞作)이다. 그에 뒤따르는 기도는 하느님께로 향한 하나의 간청인데, 묵상은 정확히 하느님의 선물일 수 밖에 없는 진정한 영적 양분을 받기 위한 하나의 준비라고 할 수 있다.
■ 다양한 묵상기도 방법
수도자들의 기도생활에서 마음의 기도(preghiera mentale)는 「독서-묵상-기도-관상」순으로 단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 단계들은 신앙의 신비에 대해 정신 마음 의지 등을 써서 집중하고 저작하고 음미하는, 서로 이어지는 순간들로 파악됐다.
수도자들에 있어서도 일과 기도를 병행하는 삶의 리듬에 따라 독서와 묵상(meditatio)이 시간적 간격을 두고 서로 나뉘어 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러한 모습은 중세 말기 무렵 묵상기도에 열중하던 평신도들에게도 아주 일상적인 경우로 자리잡았다.
직업의 다양성은 그들에게 묵상기도를 위한 시간을 따로 갖게 했으나 모두가 성서를 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그들을 위한 별도의 묵상 방법들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했다.
묵상 방법이 제대로 적용되려면, 무엇보다 그것이 단순화될 필요가 있다.
중세말기에 제시된 첫 방법들은 상당히 복잡했다. 예를 들면 어떤 것은 모든 묵상 주제들에 적용될 수 있는 스케마를 제시했는데 그것은 스물 세개의 단계로 나뉘어지기도 했다. 그러한 복잡성은 부정적 의미로 해석되기보다는 묵상을 쉽게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됐다.
물론 이러한 것들의 적용은 어느 정도 자유로웠다. 각 묵상은 어떤 신비를 탐구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더욱 지성의 사용에 중점을 두고, 또 어떤 이들은 상상 혹은 정서적 발로들을 강조했는데 무엇보다 묵상의 실천을 정리하는 것들이었다. 이와함께 영성적 특징들을 갖는 다양한 기도 자세들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방법들도 제시됐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하느님 현존에 대한 입문적 훈련에 중점을 두었는데, 성인이 제시한 기도의 결론은 실천되는 것, 즉 감사 봉헌 청원의 행위들이었다. 한편 술피스의 기도는 하느님 위격들과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여기서는 「찬미」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