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획일화되고 비합리적인 권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는 창조적 세대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이들은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해묵은 고민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지난 한 해 동안 보여준 이들 세대의 잠재력과 활동력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적극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할 때이다.
인터넷으로 사회 변혁
▲ 2030 세대는 이제 미래 사회의 형성에 한 몫을 담당하는 사회 계층으로 인정받고 있다.
2030을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르자면 그것은 「네티즌」이다. 가부장적 위계질서와 권위주의적인 사회 질서 안에서 인터넷의 확산은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급속하게 확대시켰고 태생부터 네트워크와 첨단 영상 및 통신 수단에 익숙했던 젊은이들이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촛불 시위가 제안된 것도 인터넷상이었으며 그 많은 시위 군중들이 운집하기까지 이뤄진 모든 연락과 공감대 형성이 바로 인터넷을 통해 이뤄진 것이었다.
이러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의 확산은 기성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네티즌들로 하여금 새로운 형태의 질서를 창출하게 한다. 수평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상에서는 누구도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지시할 수 없으며 강제성을 띤 명령을 내릴 수도 없다. 오직 제안과 그 제안에 동의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자발적인 행동이 이어질 뿐이다.
이러한 자발적인 확신과 선택의 행위가 가능한데에는 또한 인터넷을 주로 하는 정보 획득의 용이함에도 이유가 있다. 즉 과거 신문이나 방송 등 메이저 언론에 모든 정보를 의존했던 시대와는 달리 인터넷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정보원이다.
초고속통신망 가입자가 1천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고도로 정보화된 우리 나라에서 사람들은 사이버 공간을 통해 다양한 정보, 가공된 정보 뿐만 아니라 편견이나 선입견이 게재되지 않은 일차적 정보 자료들을 서로 신속히 주고 받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정보의 진위를 스스로 판단하고 분석하는 능력도 키워나갔다.
2030의 잠재력은 첨단 통신수단이라는 인프라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이들은 전후 세대, 민주화운동의 굴곡진 역사로부터의 피해의식이 없는, 또는 상대적으로 적은 세대이며 경제적 풍요로움의 혜택을 받은 세대들이다.
그런 만큼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자기에 대한 확신이 크고 자유로운 삶에 익숙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다. 독재시절처럼 자신의 행동이 사회의 규제 항목에 타당한가를 고민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은 또 경제성장의 풍요를 누리면서 높은 소비성향으로 90년대말부터 주목받아 왔다. 「2030」이라는 용어가 언론에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들의 소비력을 주목한 한 카드회사의 마케팅 타킷으로 선정된 이후이다.
대중문화의 영향 역시 이들을 형성해온 주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욕구들을 끊임없이 자극해온 대중문화 상품들로부터 이들은 개인적 관심을 충족하는 법을 배우는 한편 관심이 일치하는 또래들과는 결속력이 대단히 강한 집단 행위를 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예컨대 팬클럽 모임이나 콘서트 등에서 보여지는 집단 행동이 그것이다.
복음화 주체 못돼
지난 한 해 동안 보여준 2030세대의 창조적이고 사회변혁적인 잠재력의 폭발이 과연 우리 사회의 발전과 성숙에 얼마나 지속적으로 기여할 것인가는 물론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2030 세대의 특성과 행동 양식, 사고방식이 이제는 과거 기성세대의 잣대로 재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 장점과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에만 사회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 안의 2030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체 신자수의 37.2%를 차지하는 20대와 30대의 청년 신자들은 과연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 어떤 위상을 지니고 어떤 소명을 실천해나가고 있는가.
사회 변혁을 주도해나갈 정도로 큰 영향력과 잠재력을 지닌 이들 계층이 과연 우리 교회 안에서 자신의 신앙적 확신을 바탕으로 자신은 물론 교회와 사회의 복음화를 추진해갈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지니고 있는지는 회의적인 차원을 넘어서 비관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발간한 교세통계에 의하면 2001년 12월 31일 현재 20세에서 39세 까지의 신자수는 모두 157만 1546명으로 전체 신자수 422만 8488명의 37.2%를 차지한다. 10년 단위로 잘라 보면 40대 80만 9263명 다음으로 30대(80만 840명), 20대(77만 706명)으로 가장 많은 계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는 매우 자주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위기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이 위기 의식을 바탕으로 각 교구에서는 청소년 사목을 강화하는 한편, 서울 대구 인천 수원 마산 등 청년사목을 전담하는 부서를 설치한 교구들도 다수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그리 나아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교구별로 청소년, 청년사목 전담자의 강화, 재정적 지원 확대, 교육이나 사목 프로그램 계발 등 청소년과 청년 사목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실제로 사목적 배려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교회 안에서 청년들이 운신할 폭은 넓지 않다.
지난 1996년 서울대교구 사목교서 「2천년대 복음화의 추진과 확산」은 젊은이들의 복음화를 강조하면서 청년층의 심각한 위기 상황을 지적하고 주일학교, 청년회, 레지오, 빈첸시오, 성가대 등 극히 일부 단체 참가자를 제외한 청년들이 『교회의 사목적 배려없이 교회 밖으로 던져져 있다』고 우려했다.
시혜적 사고방식 탈피
해결책은 이제 더 이상 교회가 무엇인가를 제공해주어야 한다는 시혜적인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찾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보았듯이 2030세대는 권위를 지닌 누군가에게서 무엇인가를 선사받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미성숙하고 가치관이 혼란스럽고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있는 세대이기 때문에 교회는 이들에게 보기 좋고 먹기 좋게 가공된 영적 상품을 전달해주어야 한다는 식의 기존의 청년 사목 프로그램들로는 더 이상이 이들에게 교회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서울대교구가 교구 시노드 의안으로 확정한 「청소년?청년 의안」에서 「청(소)년 중심의 사목」을 강조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의안은 『청(소)년이 자신들의 활동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일련의 사목활동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도록 한다』고 제안하면서 『단순히 사목자의 배려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가 사목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2030이라는 이름으로 떠오른 젊은 세대의 특성과 변화의 욕구를 좀더 허심탄회하게 분석하고 수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탈권위적, 수평적 대화 지향
변화의 욕구는 교회 안에서도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부분적으로나마 가시화되고 있다. 각 교구와 교회 단체들이 개설해 둔 인터넷 사이트들에서는 각종 게시판들을 통해 부정적인 교회의 이미지와 사례들이 넘치고 있다. 폭로전을 방불케할 정도로 신랄한 비난이 때로는 원색적이고 유아기적인 모습으로 이어져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교회 역시 네티즌들의 비판의 눈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은 분명하고 교회는 이러한 변화의 욕구를 겸허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종교와 신앙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특성과 이들의 행동양식과 가치관이 상치되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 충분히 고려돼야 할 것이다.
중앙집권적이고 권위로 가르치는 교회는 탈권위적이고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는 이들의 취향이 아닐 수 있다. 또 공동체 의식과 이타적인 자기 희생, 헌신을 강조하는 종교적인 가르침에 대해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익명을 선호하는 네티즌들은 기본적으로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신앙은 선과 악을 구별하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위를 권장하지만 이들은 옳고 그름보다는 좋은 것이 무엇이고 싫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깊이 있는 사목적 대안 필요
2030 세대 자체가 갖고 있는 결정적인 결함도 있을 것이다. 자발성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다양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개인주의적인 특성에 따라 자기 관심사에 매몰될 수 있고 익명성 때문에 무책임할 수 있으며 네트워크에 빠져 깊이 있는 인간 관계 형성에 취약한 면도 분명히 있다. 가벼운 생각과 발걸음으로 인생과 세계에 대한 진리에 무관심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30 세대는 이제 사회의 신 주류로 등장했으며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사회 변혁을 이뤄냄으로써 미래 사회의 형성에 한 몫을 담당하는 사회 계층으로 인정받고 있다.
교회 역시 더 이상 이들에게 그 존재와 역할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때 미래 교회는 무기력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지난해 볼 수 있었던 이들의 그 엄청난 파워, 변혁의 의지와 실천이 이제 교회 안에서도 시작될 수 있도록 보다 깊이 있는 사목적 대안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