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 프랭크의 일기」, 죽음의 그림자가 도처에 깔려있는 상황에서도 일기를 매일같이 적었다는 용기와 여유만으로도 안네는 한동안 내 유년 시절의 우상이 되기에 충분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해 본다. 정작 위대했던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기를 썼던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게 했던」, 일기 쓰기가 주던 내면의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사실 숨이 서려있는 모든 것은, 모순적이게도 생명을 위협받는 열악한 상황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죽음의 상황에서 일기를 쓴다는 것은 이를 통해 존재의 「살아있음」을 확인하고자 하던, 일종의 존재론적 작업이었던 것인데, 이와 동일한 일이 이스라엘에게도 그대로 발생하였다.
이스라엘이 그들만의 신앙을 내밀하고도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던 것은 평화 시기가 아니라 「유배」라는 고통과 죽음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유배 중, 「모세오경」이 거의 완성되고, 「예언서」의 많은 부분 역시 저술, 편집된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성문서」도 많은 부분 유배 중에 저술되기 시작하여 대부분 유배 이후 완성된다. 이제 우리는 유배라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그들의 하느님이 누구이시며 자신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이제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기록하기 시작한 성문서의 저자들과 이들의 저작 배경을 살펴보기로 한다
정확한 저자 알수 없어
성문서에 해당하는 여러 책들 중, 저자를 정확히 규명할 수 있는 책은 거의 없다. 아가서, 전도서, 잠언 등은 저자를 솔로몬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솔로몬의 이름을 따서 그의 업적으로 돌리고자한 신앙 전통의 결과이지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시편 역시 다윗의 작품이라고 간주되어 왔지만, 150편 모두를 그의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많은 시가(詩歌)를 적극 장려하였던 그의 정치적 노선이 여러 시편의 저자로 그를 상정케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실제 저자와 책에서 밝힌 저자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현상은 고대 사회 안에 흔히 사용되던 일종의 문학 기법인데 이를 「가명성」(假名性)이라 부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문서의 많은 작품들이 다윗과 솔로몬의 이름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후에 정통성을 인정받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역사 안에 가장 뛰어난 인물들로 고백되어지는 그들의 이름 때문에, 논쟁이 되는 내용(아가서와 전도서의 경우)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정경 목록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솔로몬과 다윗의 명성을 빌어, 그 이름이 이스라엘 사회 안에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하는 부동의 이미지를 일종의 「효과장치」로 사용하려던 익명의 저자들의 의도는, 작품에 전통적 권위와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제대로 적중하였던 것이다.
대부분 유배 이후에 저작
성문서 중에서 제일 먼저 기록되기 시작했던 것은 시편인데, 대략 기원전 10세기 혹은 그 이전부터 기록되기 시작하여 유배 이후까지 이르는 오랜 제작과정을 거친다. 성문서 중 최후에 기록된 작품은 다니엘서로 기원전 2세기(164년경)에 제작되었다. 이외에도 잠언의 일부(특히 10~31장)는 유배 이전의 것이지만 대부분 유배 이후 저술 편집되었고, 전도서는 확실히 유배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기원전 3세기경). 욥기 역시 일반적으로 유배 이후의 것으로 보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말해, 성문서 대부분은 유배 중 혹은 이후에 제작되기 시작하여 완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배 이후에 저작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는데, 이는 처절한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성숙한 시각이 성문서 대부분에 내장되게 되는 궁극적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여인이 어머니가 된 이후에는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이 달라진다고 한다. 생명이 줄 수 있는 고통과 그 고통을 통한 생(生)에의 예의를 철저히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고통을 통해 여과된 성숙한 관점으로 삶과 세상 바라보기, 유배 이후 제작된 성문서가 가지는 가장 소중한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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