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가 되면 첫 미사란 말이 자주 쓰입니다. 우리 원주교구도 지난 1월 15일 사제서품식 후 새로 탄생한 사제들의 첫 미사가 출신본당에서부터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도 젊은 신부이지만 새 신부들의 약간 어색한듯한 미사 집전 모습은 익숙함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현재의 나의 모습에 비교되면서 뭔가는 모르지만 소중한 것을 잊어버렸다는 아쉬움에 씁쓸한 미소를 남깁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처음」이라는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첫 미사, 첫 강복 등 교회의 용어 뿐 아니라 첫 사랑, 첫 키스, 첫 걸음, 첫 작품 등 「처음」이란 말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러나 처음이라는 말은 외적으로만 본다면 그리 큰 의미는 없습니다. 첫 미사를 드리는 사제보다는 미사의 맛과 의미를 음미할 여유가 있는 중년 사제의 모습이 더 그럴싸하고, 신자들에게 인생과 신앙의 깊은 의미를 줄 수 있는 강론도 많은 경우 중년 사제의 몫입니다. 그리고 예술가들의 작품도 첫 작품보다는 후대의 작품이 작가의 정신에 더 부합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리고 다른 모든 부분에서도 「처음」보다는 「그 이후」가 더 많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인간세상의 법칙입니다.
그러면 왜 인간은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처음」이라는 말에 의미를 부여할까요?
그것은 「처음」이라는 말이 가지는 외적 행동 때문이 아니라 처음이라는 말이 가지는 정신 때문입니다. 처녀성이라는 순수함과 순백함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속에 간직한 이상적인 방향성과 두려워하는 열정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신이 있기에 「처음」이라는 말은 작고 보잘것 없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이정표」로써 방향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읽은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시오」란 정채봉님의 시에서도 결혼한 이들의 기쁨은 첫 마음에서 나오고, 불평은 묵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처음 둥지를 틀던 첫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불평이 걷히고 기쁨에 찬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첫 활동을 전해줍니다. 40일 단식 후 예수님은 갈릴래아에서 『때가 다 되어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첫 복음을 전하시고, 전도활동에 함께 할 당신의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은 여러 가지 중요한 단어가 있어 전부 설명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대략 그 뜻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이제 역사가 완성될 때가 되어 하느님의 통치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있기에 삶의 방향 전환인 「회개」와 말씀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나오는 제자들의 소명과 추종 이야기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생활의 구체적인 예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제자들의 이상적인 모습이 이와 같아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복음을 보면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이러한 복음의 내용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활동들은 예수님의 첫 활동들이기에 그분 활동 장소와 복음 선포의 대상자들도 아울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아우를 때 어렴풋하게나마 예수님이 가지셨던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예수님의 첫 마음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따르면 그분의 첫 활동무대는 갈릴래아였고, 전도 활동의 첫 결실은 어부 네사람으로 나타납니다. 당시 갈릴래아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방인들과 가난한 유다인들이 살던 장소였고, 예수님의 성장과 공생활, 그리고 첫 복음선포와 승천의 장소가 바로 갈릴래아입니다. 그리고 첫 복음 선포의 결실인 첫 제자들도 어부들인데 이는 당시 사회에서 천대받고 질시 받던 땅의 백성군에 속하던 이들입니다.
「갈릴래아와 어부」.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려볼 수 있습니다. 「소외된 지역」과 「사회적 약자들」을 당신 활동의 첫 대상으로 삼고, 그분의 삶이 갈릴래아와 어부들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지속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난한 이들과 약자들, 죄인들을 끌어안고자 하는 그분의 마음이 반영된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오늘은 사회복지 주일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는 것은 단순히 논리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고자 함이 바로 예수님의 첫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첫 마음을 헤아려 보면서 한 주간을 시작합시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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