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 먼저 필요한 전제들을 빼지 않는 작업이 중요하다. 하느님 현존 앞에 자신을 놓고 자신의 지향을 정화하며 심상(imago)을 응시하고 묵상을 통해 얻고자 하는 은총을 명백히 한다.
그것은 심상이 다른 능력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심상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묵상된 장면을 더욱 구체화하기 위해, 그리고 그리스도의 위격을 향한 좀더 깊은 개인적 관심을 고무하기 위한 것이다.
위격들과의 대화 순간은 기도에 있어 본질적인 것이다. 그 순간은 개인적 일치와 주님께 봉사하기 위한 구체적 노력을 고무하고 지성적인 고찰을 보충한다. 사실 이 대화의 시간이 없다면 묵상이란 단지 추상적인 사색에 머무르게 될 뿐이다.
이 세가지 능력에 의한 묵상 뿐만 아니라 이냐시오 성인은 「복음의 장면에 대한 묵상」도 권한다. 각 복음 장면 안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말을 들으며, 행동들을 고찰하도록 한다.
이 형태의 기도는 앞의 기도와 구별된다. 왜냐하면 영적 눈길을 추상적일 수 밖에 없는 진리들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이 기도는 일상적으로 더 깊은 정신 집중을 요하며 정서적인 인격에 적합할 수 있다. 또한 성서에 대해 일상적인 친밀함을 진작시키고 정통하게 한다.
이밖에도 이냐시오 성인은 친숙한 내용을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형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는 그 양에 상관하지 말고 기도를 하게 만드는 내적인 맛을 느끼도록 해야한다고 성인은 권고한다.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맛보고 느끼는 것이 영혼을 충족시킨다』(Esercizi Spirituali n. 2). 또한 숨의 리듬에 기도하는 방법도 권하고 있다. (Esercizi Spirituali nn. 258∼260).
■ 묵상의 행동
묵상 때 영혼의 행위란 결코 단순한 지혜의 행위가 아니다. 지혜의 행동이란 예를들어 묵상 제목을 듣는다건가 혹은 준비를 위해 책을 읽고 그 문장에 크게 감동되어 아주 열심히 그 줄거리나 설명을 깨달으려고 공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결코 묵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또한 하느님 것에 특별히 호기심을 가지고 그 지식을 구하는 것도 단지 그 지식에만 머문다고 할때 그것도 묵상은 아니다.
그 때 만큼은 하느님 가르침을 인식하고 즐겁다고 하겠지만 그 즐거움은 참된 사랑에서 나온다기 보다는 자기 만족이기 쉽기 때문이다. 참된 묵상은 하느님께로 부터의 사랑에서 나와 하느님 사랑으로 결합한다.
묵상을 할 때 우선적인 준비는 「먼저 묵상할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는 먼저 내가 하느님 앞에서 무엇인가를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묵상 초기에는 「나는 무(無)다」라는 것을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내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죄를 범했기에 무(無)보다도 못한 존재다」.
이러한 겸손과 통회로 시작하면 하느님 은혜를 방해하는 교만은 제거될 것이다. 참된 겸손은 절망보다는 하느님 은총에 마음을 도달하게 한다.
또한 여기서는 신덕과 행동이 중요하다. 하느님과 그 온갖 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신비 혹은 사명, 사람의 목적, 죄, 직무 등과 각 축일의 신비 등을 묵상한다. 이렇게 기억력, 상상력을 움직여 어느정도 생각해 내려고 노력 하지만 후에 「그것을 믿는다」 혹은 「더욱 믿고 싶다」는 마음을 분명히 일으킨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말이 필요치 않고 오히려 점점 이론을 줄여 반성을 적게 하고 단지 단순히 하느님을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같은 말을 몇번이라도 마음속에 반복하는 것이 좋다. 또한 일단 정해진 주제와 다른 자연스런 감정이 일어난다면 정해진 주제나 방법에 너무 끼워 맞추려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어서 실제적인 결심과 행동이 뒤따라 나온다. 특히 무엇보다 명심할 것은 한번에 누구나 묵상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념할 것은 우선적으로 묵상하려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
▲ 예수회 26대 총장 아루뻬 신부가 기도하고 있는 모습. 예수회 창설자인 이냐시오 성인은 「복음의 장면에 대한 묵상」도 권한다. 각 복음 장면 안에서 그들의 말을 들으며, 행동들을 고찰하도록 한다.
■ 묵상생활의 지속
묵상 방법 연구에 부심하기 보다는 마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묵상의 은혜를 받고 싶다는 의지를 지니고 겸손하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 보잘 것 없이 보이는 것을 좋아하고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여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것, 경멸 당해도 자신 같은 죄인에게는 당연하다고 여기며 신경쓰지 않고 더 나아가 이것을 예수님과 함께 겪는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다.
둘째, 보속과 이탈의 정신이다. 세간의 일에 사로잡혀 영혼의 평화를 잃은 결과 질투하고 다른 이가 내게 저지른 잘못을 언제까지나 기억하는 등의 상태에서는 예수님과 대화가 되지 않는다.
셋째, 하루에도 몇번씩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을 하기전, 혹은 축일에 더욱 더 많은 사랑의 행위를 하는 등 수시로 예수님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넷째, 내적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스스로 마음을 소란하게 하고 자신의 것에만 몰두하는 영혼에게는 예수님의 인자하고 유순한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묵상의 이런 먼 준비는 가까운 준비보다 더 중요하다. 즉 자신의 마음속에 사랑을 증진하기 위한 일상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묵상의 지속을 위해서는 우선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영적 태만에 대해서 악마에 대해서 끊임없이 싸움을 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한 인내와 싸움을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과 성령께 깊은 신뢰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택하셨던 길을 걸어 예수를 따라야 한다.
이렇게 모든 것을 하느님이 주셨기에 시련도 즐겁고 그 시련이 하느님 영광 그리고 자비와 애련함의 표징이라는 것을 이해할 때, 이를 묵상생활이라 할 수 있다. 아침 저녁의 묵상은 하나의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