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반적으로 「투신」(commitment)이라는 수도생활의 개념이 퇴색돼 가고 있는 영향도 있지만 요즘 수도자들에게서 봉헌, 헌신, 희생이라는 개념이 희석돼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봉헌생활의 날이 헌신 투신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한국교회 첫 수도회 출신 주교로서 수도회 수도자들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이한택 주교는 봉헌생활의 날을 맞아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수도자가 지녀야할 「헌신」의 의미는 말 그대로 「나를 모두 바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를 통해 우리를 위해 마지막 숨 까지도 바친 헌신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수도자들은 모든 것을 내어놓기 보다 「우리 수도회」, 「우리 공동체」 등 집단적 공동체 중심적인 경향 속에 자신들만의 벽을 높이고 있는 듯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교회가 원하고 사람들이 원한다면 언제라도 모두 드러내고 줄 수 있다는 정신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주교는 수도자들이 세상 안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복음을 증거하는 삶」이라고 꼽았다. 『정말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처럼 사는 삶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인 이주교는 『과거에 비해 삶의 패턴이 크게 바뀐 상황 안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모양은 달라질 수 있지만 복음에 담겨진 그리스도의 모습은 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생활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수도회마다 각각의 향기가 있고 크기, 색상이 있습니다. 또 시대 흐름에 맞게 형태도 바뀔 수 있지만 본질적인 것, 증거의 생활은 수도자들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내용입니다』
이주교는 현재 한국교회 수도회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고충에 대해 『각 수도회 고유의 카리스마를 시대에 어떻게 적용시키는가 하는데 많은 고민과 갈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히고 『그 같은 고민은 세상이 계속되는 한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고 또 그 갈등만큼 수도회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라면서 『결국 끊임없이 성숙과 쇄신을 위해 변화하도록 노력하는 작업이 요청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서도 수도자들은 서원때 부터 계속적으로 성숙을 향해 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들려준 이주교는 『꾸준하게 복음으로 돌아가고 창설자 정신으로 되돌아가려 애쓰는 데서 성숙과 쇄신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이주교는 또 『평신도들 역시 봉헌생활의 날을 계기로 결혼 서약 때 서로 언약했던 내용을 다시금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조언하면서 『결혼한 이들은 배우자에게 자신을 봉헌하고 또한 배우자를 통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늘 생활 안에서 결혼 첫날 약속했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회 남자수도회들이 활동이나 규모 면에서 여자수도회에 비해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관련, 이주교는 『성소가 준다고 걱정들을 하지만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고 또 역사적으로도 남자수도회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며 『외형적인 숫자나 규모에 연연해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수도회 안에서부터 원인을 찾아 그간 얼마나 자신감 있게 수도자들의 모습을 보여왔는지, 당당하게 수사로 사는 보람을 드러내 왔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교는 결국 『남자수도회 활동이 활발해 지기 위해서는 확실한 신원 의식을 통해 보여질 수 있는 수사로서의 긍지와 떳떳함과 내실화가 중요하다』고 부언했다.
교구 수도회들간 협력 문제에 대해서 『교회법은 교구가 모든 수도자들을 보호 육성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 교구들이 수도회에 지나치게 인색하지 않았나 혹은 때에 따라 권위적이지 않았는가 되돌아볼 여지가 있다』고 말한 이주교는 『수도회들은 또한 교구에서 도움을 청할 때 카리스마를 나누는 기회로 여겨 적극 협력하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 이라고 피력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봉헌생활의 날 의미가 일차적으로 수도자들에게 초점을 두는 것이지만 평신도들 역시 봉헌생활을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당부한 이주교는 『수도자들은 봉헌생활을 외적으로 표시하면서 그 삶을 위해 평신도들보다 더 노력하는 이들』이라면서 『평신도들은 그 모습을 인정하고 협조하면서 수도자들이 수도자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느님께 매달리며 사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었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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