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는 오랫 동안 사목 일선에서 기다려온 「가톨릭 상장례 예식서」를 최종 승인했다. 이 예식서는 한국교회에 교계제도가 설정된 이후 지난 40년 동안 꾸준하게 진행돼온 토착화 노력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종교 심성, 특히 상장례의 풍습에 적응, 토착화된 첫 공식 전례서라고 할 수 있다.
예식서는 특히 유교, 불교, 무속 등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종교들 안에 포함돼 있는 장례 예식을 신학적으로 분석하고 죽음과 관련된 우리 민족 고유의 종교적 심성들을 연구 검토해 이를 가톨릭 신앙의 눈으로 이해하고 반영해서 교회의 공적 전례 예식 안에 수용함으로써 한국교회 전례 토착화의 큰 업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상장례 예식서가 승인되기까지는 1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교회의 산하 한국사목연구소가 지난 1989년 5월 29일 관계 전문가들로 「상제례토착화연구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작업을 시작한지 무려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여기서 전례를 토착화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신중을 요하는 작업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즉 전례 외의 다른 신학이나 교회 전통과 관습 등의 경우에는 적절한 연구와 검토를 통해 가설을 세우거나 시범적 실시를 할 수 있으나 교회가 하느님께 바치는 공적 예배행위로서의 전례는 가톨릭교회의 통일성의 표지이기 때문에 가설을 세우거나 편의대로 시범 실시하도록 쉽게 허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례의 토착화 역시 다른 부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기점으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된다. 공의회 이전까지는 로마식 전례의 통일성을 강조한 나머지 각 지역의 문화적 전통과 풍습을 무시한 채 전례가 행해졌었기 때문에 모든 교회활동의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인 전례에 신자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부족했다.
이에 따라 19세기말부터 전례운동이 일어났고 특히 선교지역에서의 전례 개혁의 필요성이 여러 차례 제기돼왔었다. 이에 따라 공의회는 로마식 전례의 본질적인 통일성을 보존한다는 조건 하에서 각 지역 주교회의가 전례를 조절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함으로써 주교회의 전례위원회를 중심으로 전례 토착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의회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선교 지역에서는 공의회 정신에 따라 전례 토착화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는데 예외 없이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이 전례서의 번역이었다. 한국교회에서도 1964년 4월 주교회의 인준을 통해 전례위원회가 설치돼 전례서 개정 작업 등 전례 토착화와 관련된 일을 맡아왔다.
전례위원회는 주교회의로부터 승인 받은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에 들어가 전례, 성음악, 성미술 등 분과위원회를 구성해 각각 작업을 시작했다. 1975년에는 미사주의 국산화를 위해서 전례위원회에서 추천한 동양맥주주식회사의 미사주를 사용하기로 했고 추석, 설날, 졸업, 회갑 등을 위한 특별 미사 경문을 수정해 교황청 인준을 신청했다.
「공동체 미사 전례」 개정 작업과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서」를 번역 완료하고 혼인성사 예식서의 수정작업을 한 위원회는 1993년 3월 15일 「공동체 미사 전례」 최종 시안을 춘계 주교회의에 상정했고 1995년 3월에는 주교회의에서 「새 미사통상문」을 인준했다.
5월에는 혼인예식서 개정을 완료하고 1996년에는 교황청 경신성사성에서 한국어 「미사 통상문」 개정안을 승인받아 1996년 12월 1일 대림시기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9월에는 「어린이 미사」 개정안에 대한 주교회의의 서면 동의 결과에 따라 승인을 받았다. 1997년 3월에는 주교회의에서 「개정 혼인예식서」와 「어린이 미사」 시안을 승인하고 교황청에 요청하기로 했고 4월에 주교회의 사무처에서 교황청 경신성사성으로 공문을 발송했다.
주교회의는 한편 1971년 3월에 개최된 회의를 통해 교황청에 두 가지 전례 적응의 의사를 표시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이듬해 12월 1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이를 승인했다. 한 가지는 존경의 표시에 관한 것으로 무릎을 꿇는 대신에 몸을 깊이 숙여 절하고 제대와 책에 친구하는 대신에 머리를 숙여 절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평화의 인사」에 관한 것으로 인사를 나누는 방법이 서로 다르므로 동작으로 하지 않고 말로 한다는 것이었으며 이에 따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라는 말이 만들어지게 됐다.
아울러 전례와 직접 연결되는 부분으로 성 음악과 성 미술에 있어서도 관계 전문가들과 일선 사목자들에 의해 토착화를 위한 노력이 진행됐다.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음악, 국악들이 전례에 활용되기 시작해 국악 성가가 더 이상 낮설지 않게 됐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생활성가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성당 건축을 중심으로 조각, 회화 등에 있어서도 전통 문화와 한국인의 심성에 적합한 교회 미술을 창작하기 위한 노력도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전례 토착화를 위한 한국교회의 관심과 작업이 이뤄져왔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는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자발적인 노력은 물론 여러 전례서에서 권장하는 적응에 대해서도 무감각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전례의안에서는 전례의 토착화와 관련해 『국민의 전통과 특성에 따라 전례의 토착화를 시도하라는 전례 헌장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제사 의식의 연구, 한을 풀어주는 무당의 예식 연구, 추석, 성묘, 대동놀이 등의 풍속에 대한 연구, 한국의 음악과 춤과 미술성의 연구를 계속하면서 어떻게 이런 전통 요소들을 그리스도교의 전례 속에 도입할 것인가에 대한 다각적인 시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토착화를 강조하면서 자칫 복음의 본질적인 부분을 훼손하거나 복음적 진리의 정체성까지 상실할 위험성에 대해서도 좀더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전례 토착화의 노력이 미진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 가톨릭 교회의 통일성을 기하는 전례의 불변적 요소들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의 전통 문화 풍습과 현실을 고려해 전례의 올바른 쇄신과 토착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 한국사목연 토착화연구위 나기정 신부 인터뷰
“‘토속화’로 빠지지 말아야”
‘다양성 속 일치’중요 원칙
▲ 나기정 신부
나기정 신부(천주교중앙협의회 한국사목연구소 토착화연구위원,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토착화에 대한 이해가 이미 체험으로 인식하고 있듯이 곧 시대 요청으로 이뤄지고 있는 필연성』이라고 강조한다.
『전례의 토착화 작업은 우리 안에서 설명되고 이해되는 딱 맞아 떨어지는 예식을 고르고 찾아내는 일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나아가 전례의 근본 원리와 변화의 의미를 찾음으로써 시간적, 공간적으로 한정된 범위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신앙을 살고 거행하는, 곧 「지금 이 자리에」 적응하고 적용하고 정착시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나아가야 합니다』
나신부는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전례 토착화 작업에 있어서 가장 미진했던 부분이 교육과 홍보라고 지적한다.
『한국교회는 다른 부문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전례 토착화 부분에 있어서도 공의회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는데 다소 소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의회 이후 전례 토착화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후속 문건들이 나왔지만 한국교회에 적극적으로 번역 소개되지 못했고 그에 따라서 일선 사목자들도 그러한 문헌들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신부는 쇄신과 변화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바로 공동체가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공감대와 여론을 형성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한 공감대가 바로 변화의 의지로 나타나게 되는데 지금까지 관계 당국과 일선 사목자, 일반 신자들 사이에서 그러한 공감대와 의지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젊은 사목자들 사이에서는 전례 토착화와 관련해 다양한 시도들을 하는 것이 눈에 띄고 이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교육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신학생 때부터 전례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충분히 교육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신부는 한편으로 자칫 토착화 노력이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토속화」 현상으로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새 문화, 우리 문화의 옷을 입히기 위해서 복음이 입고 있는 전통적인 서구 그리스도교 문화를 무한정 벗길 수는 없다』며 『잘못하면 문화 속에 담긴 진리의 정체성을 상실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신부는 전례 토착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는 토착화 작업에서 「그리스도교 진리의 절대성」이 드러나야 하고 그리스도교가 문화도 구원해야 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조절, 적응, 더 깊은 적응의 토착화 과정을 착실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성 안의 일치」는 바로 공의회 정신이기도 하지만 토착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기도 합니다. 전례가 가톨릭교회의 통일성의 표지이지만 천편일률적으로 같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본당마다 성모의 밤, 성탄 대축일 행사가 다양하게 나타나듯이 주어진 기본 틀과 정신 안에서 다양성 속의 일치를 이룰 수 있는 유연한 자세와 실천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