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의 날을 맞아 성 빈첸시오회 아 바오로회 병원봉사부에서 봉사하고 있는 김병애(아녜스.51.서울 장위동본당)씨의 글을 싣는다. 가족을 위한 간호도 6년이라면 오랜 세월이다.
하지만 김씨는 지난 97년부터 꼬박 6년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를 간호해 왔다. 병자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김씨의 모습에서 병자의 날을 맞이하는 신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되짚어본다.
한 환자를 6년간 변함없이 간병했다는 것이 저에게는 그저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특별히 사랑하시어 친자매 이상으로 자매의 연을 맺게 해 주시기 위해 저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말입니다.
1997년 3월 6일. 제가 간병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지난 후에 언니를 만나게 됐습니다. 의식이 없을 뿐 아니라 식사는 코를 통해, 가래는 입과 목으로 빼내는 상태였습니다.
언니에게 유달리 정이 갔던 것은 저의 친언니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 사고로 실명된 친언니와 똑같이 환자도 한 쪽 눈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불현듯 언니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대화도 할 수 없던 언니에게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 끝에 제 목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언니가 들어줄 지도 몰랐지만 저는 언니를 위해 테이프를 녹음했습니다. 「성가」, 「시편」 그리고 「묵주기도」를 제 목소리로 녹음해 언니에 귀에 반복해서 들려주었습니다.
저의 정성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요? 언니가 조금씩 반응을 보이더군요. 호기심에 찬 듯한 눈빛, 듣던 목소리를 다시 듣는 것 같은 표정을 보자 저 나름대로 확신이 들었습니다. 언니가 정말 기뻐하고 있다고 속으로 몇 번이고 되내였습니다.
언니와 저는 성지순례도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성지에 가면 언니의 얼굴은 병원에 있을 때보다도 더 편안해 보이고 기뻐 보였습니다. 마치 기도 속에서 만나는 성모님의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는 듯 제 마음도 뿌듯했습니다. 그렇게 6년 동안 언니와 저는 얼굴표정과 눈빛만 봐도 대화가 통하는 그런 자매가 됐습니다.
2002년 12월 언니의 남편이 정년퇴임을 하고 더 이상 간병인이 필요 없어 언니 곁을 떠나게 됐습니다. 언니를 오랫동안 간병하면서 사실 내 자신을 언니에게 모두 준 것만 같은 느낌이 든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지나고 보니 내가 베푼 것 보다 언니에게 받은 것이 너무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다른 누구보다 살아계신 성모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으며 언니는 저에게 따뜻한 마음을 항상 간직할 수 있도록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지금 저는 강남성모병원 9층에서 중풍에 걸린 75세 할머니를 모시고 있습니다. 비록 몸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불편하지만 주님 자녀 되기로 마음먹고 교리공부를 하고 계십니다. 교리공부를 너무 늦게 해 주님께 죄송하다며 홀로 눈물 흘리시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저려옵니다.
간병생활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마음. 「주님은 저희를 필요로 하는 분께 인도하시고 그 환자 분을 통해 예수님과 성모님을 만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고통받는 분들에게 축복을 많이 주십니다. 축복 받는 분들 옆에서 순수한 사랑과 정성으로 좀 더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 드리는 일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저는 오늘도 병원을 향해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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