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마르코복음에 유일하게 나오는 나병 치유 기적사화입니다. 나병 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고쳐주시기를 청하고, 예수님은 그를 측은하게 보시고 그를 만지시며 치유해 주셨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는 먼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당시 유다인들의 사고에 의하면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람들만이 나병을 고쳐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민수 12, 9~15. 2 열왕 5, 1~27). 그러나 하느님의 사람들인 모세와 엘리야는 모두 하느님께 간청하면서 나병을 고쳤던 것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나병환자를 고쳐주시고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람인 모세나 엘리야보다 탁월하신 분이라는 사실과 하느님으로부터 전권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도론적인 내용보다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환우와 예수님의 만남과 치유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나병이 가지는 의미와 나병환자에게 요구되었던 당시 규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는 의학이 그리 발달된 시대도 아니고 종교적인 영역이 전 생활에 영향을 끼쳤던 시대였습니다. 그러기에 이 시대는 병의 원인을 의학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종교적으로 접근했는데 크게 두가지로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는 악령이 사람 안으로 들어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함으로 병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든지 아니면 병을 「죄의 결과」로 보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어떻게 보든 이러한 결과는 병자들을 불결한자로 취급하거나 차별을 받게 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병은 더 심각했습니다. 성서에서는 문둥병 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피부병을 나병이라 하여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나병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어떻든 나병은 불결할 뿐 아니라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나병환자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가오면 이들은 「불결」 「불결」 하고 소리를 질러야 했고, 예루살렘과 기타 성곽도시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성외곽에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꾸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나병은 그 자체의 고통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단절과 사회적, 종교적 소외를 가져오는 병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오늘 복음의 나환자는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간청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나환우의 그러한 행동은 법을 어기는 행동일 뿐 아니라 많은 이들로부터 질시와 핍박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요, 어쩌면 사람들에게 돌을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나환자는 당시의 규정도,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도 헤아리지 않고 예수님 앞에 나섭니다. 병을 치유하겠다는 강렬한 희망과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그리고 그분께 대한 철저한 의탁의 정신입니다.
아마 이러한 나환자의 행동이 오늘의 기적을 가져오는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언젠가 말씀드렸지만 기적은 순수 하느님만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기도 하기에,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인간의 협력이 있을 때만이 기적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욱 더 흥미로운 사실은 나환자의 이러한 행위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입니다. 그분은 능력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시기에 말씀 한마디로 나병을 치유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말씀으로만 나환자를 치유하신 것이 아니라 손을 갖다 대시며 나병을 고쳐주십니다. 나환우와의 접촉이 법으로 금지된 시대요, 법으로 금지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전염의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나환우를 손으로 어루만지시는 것입니다(민수기12, 9절 이하와 2 열왕기 5, 1 이하를 보면 알겠지만 모세와 엘리야도 나병을 치유했지만 접촉을 하지는 않음).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은 먼저 당시 병자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졌던 생각을 비판하면서 병자는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어루만지고 감싸 안아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줍니다. 즉, 예수님은 손을 대시는 행위를 통해 나환자에게 최고의 사랑과 친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관습을 뛰어넘는 신뢰에 찬 나환자의 애원」에 예수님이 최고의 사랑과 친교로 응답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은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지만 우리가 신앙의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