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은퇴할 때까지 참으로 크고 많은 행사와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부산가톨릭대학을 설립한 일, 가톨릭센터를 건립한 일, 주교좌 중앙성당과 남천성당을 건립한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교황님의 방한과 부산방문, 부산교구 설정 40주년 행사가 떠올려진다.
그 어느 하나도 사연이 없는 일이 없었지만 중앙성당에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한 일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독일 시골본당에 버려져있던 파이프오르간을 1년 이상 걸려 중앙성당에 옮겨와 설치했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하안또니오신부와 잘아는 그 본당신부의 허락을 얻는 과정이나 기술자를 독일로 보내 연수시킨 일, 기념연주회를 갖던 일들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나의 교구장 재임시절인 1971년부터 1991년 정도까지는 한국경제의 도약기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보통 학문적으로 보면 경제성장과 종교의식의 성장은 반비례한다는데 한국천주교회의 교세가 71년부터 계속 성장했다는 것이 독특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배가 부르면 하느님을 잊어버리는 것이 통례인데 우리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 꾸준히 교세성장을 가져왔다.
한국교회는 그 출발이 평신도로 시작하고 박해시절을 거치며 사제의 귀중함을 뼈저리게 체험한 교회다. 지금은 신부들이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사제로서만 할 수 있는 일, 사제 본연의 임무, 고유한 일에만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시기다. 교구장 재임시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사제단의 일치」였다. 기회있을 때 마다 항상 강조했다.
문화사적으로 지금은 「감각문화시대」다. 사랑이라든지 신앙을 증거하는 데도 감각할 수 있도록, 보여줘야 하는 시대다. 더불어 스피드시대라는 미명하에 즉석식 사고가 만연하고 있다. 강론도 5분이 초과되면 안듣고, 10분이 지나면 그냥 앉아있고, 15분이 지나면 지겨워한다는 말이 있다. 세태의 흐름, 사조라는 것이 무섭다. TV와 같이 『봐라, 이것이다』하는 물증을 보여줘야 한다. 가톨릭의 물증은 표징이다.
세계 문화사를 보면 이념의 시기, 제도의 시기를 거쳐 감각문화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흐름은 사이클식으로 또 다시 이념의 시기가 돌아오게 되어있다. 사제 수급이 여유있을 때인 지금 우리 교회는 다음 시대를 대비해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올바른 처방이 내려져야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한번 그 열정이 식어버리면 다시 끌어올리기가 어려운 법이다. 한국교회로서는 끊임없는 쇄신과 변화에 대한 올바른 처신으로 대비해야 한다. 언제 또다시 이런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
요즈음 사람들 대부분이 「돈」을 추구한다. 그런데 그러한 세상의 가치는 한정돼 있다. 그것들을 성취하고 나면 싫증이 나게돼 있다. 허탈감, 좌절감을 맛보고 나중에는 심리적으로 「속았다」는 심정과 함께 불행해진다. 신자와 비신자의 차이는 얼굴을 통해서 드러나야 한다. 신앙인은 가톨릭의 정체성을 보여줘야 한다. 신앙이 있다면 반드시 일어나는 끝이 없는 희망, 기쁨을 항상 얼굴에 나타내는 것이 오늘날의 전교방법이다.
끝으로 80년 가까운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정말 내 개인에 대한 하느님 섭리의 손길이 느껴진다. 신학교에 갈때도 내가 원해서 갔던 것도 아니었고, 주교가 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인생 마디마디, 그 과정 하나하나 마다 하느님 섭리의 손이 보이는 것 같다.
내 평생 마지막 깨달음은 머리에서부터 내 발끝까지 영성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내것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주님 주신 모든 은총은 한이 없다. 그에 상응한 보답은 한이 없는 사랑뿐이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가장 바라시는 것은 천당가는 일일 것이다. 이 받은 은혜에 대해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은 천당가는 일뿐이다.
하느님께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해서 천당가야 할 의무가 있다. 내가 천당에 가서 그동안 받은 은혜를 갚아드려야 한다. 정말 내가 받은 은혜에 항상 감사할 때 더 이상의 기쁨은 없을 것이다. 나는 요즘 늦게 이 점을 깨닫고 깨달은 바를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제 행동으로 신앙을 증거해야 한다. 기쁨, 행복에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실제 행복을 보여줘야 한다.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복음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80세가 되는 2004년에 회고록을 펴내고 평소 써오던 서예작품 전시회를 갖고싶다. 이때 사제들을 위한 강론집과 석사.박사학위논문 등을 출판할 계획이다. 그동안 내 글을 읽어주신 전국의 모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이 지면을 할애해 준 가톨릭신문사 측에도 감사드린다.
우리 모두 천당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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