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에서는 생명윤리법안을 조속 입법하기로 결정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국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라엘리안의 인간 복제 성공 주장에 자극받아 급물살을 탄 이같은 움직임은 우선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수년간을 끌어오며 논란이 됐던 법안 제정이 곧 이뤄진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되면서도 치료 목적의 경우 선별적으로 허용한다는 내용이 새로 명시됨으로써 결국은 하나의 온전한 생명체로서의 배아 복제와 파기가 허용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되고 자칫 인간 개체 복제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생명윤리법안 제정이 어디까지 왔는지 살펴보고 치료와 연구용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인간 생명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배아 복제 허용이 갖는 문제점을 알아본다.
정부 최종안, 예외적 허용 우려
정부는 2월 6일 결국 인간 복제 전단계인 체세포 복제 연구를 사실상 허용키로 결정했다. 보건복지부가 과학기술부와 합의한 최종안은 인간 복제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희귀병, 난치병 치료를 위한 체세포 복제는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문항을 새로 포함하고 있다.
즉 과학, 의학계의 요구와 현실적 필요성에 따라 치료용 복제 연구를 허용하되 허용 범위는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심의해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복지부 장관이 개별 연구 사안에 대해서 연구 허용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의 반응은 매우 비판적이다. 즉 치료용이라 할지라도 인간 개체 복제의 바로 전단계인 체세포 복제가 제한적이나마 가능해짐에 따라 정부의 눈길을 벗어난 전국 곳곳의 연구소 등에서의 인간 복제 시도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결국 사실상 정부가 인간 복제를 방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반응이다.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는 배아의 지위 문제와 깊이 관련된다. 법안이 배아 복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한 것은 배아의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적 허용 조항을 두고 있는 것은 법안 자체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 하나의 생명체인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뽑아내고 나머지는 폐기처분하는 등의 실험은 한 사람의 치료라는 명분 아래 또 다른 생명을 죽이는 무서운 행위라는 점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송두리째 고의적으로 훼손하는 행위이다.
이번 최종안을 만들어낸 복지부와 과기부의 합의는 양 부처가 서로 한발씩 양보, 타협을 함으로써 성사된 것으로 보인다. 인간 복제 금지에 강조점을 둔 복지부와 생명과학산업의 발전을 주장하는 과학계와 산업계의 주장을 대변하는 과기부는 지난 2년 여 동안 체세포 복제 연구 허용을 두고 첨예하게 부딪혀왔다.
그런데 올 초 클로네이드사의 인간 복제 소동이 벌어지면서 인간 복제의 문제점에 대한 여론이 비등하면서 더 이상 생명윤리법 제정을 미룰 수 없다는 인식과 국민적 공감대가 나타나면서 양 부처는 결국 『금지를 원칙으로 하되 치료 목적 연구는 예외를 인정한다』고 합의하게 된 것이다.
시민·종교계, “전면 금지만이 실효성 보장”
한편 정부의 입법안이 발표되기에 앞서, 입법이 요원한 것으로 판단한 시민단체와 종교계에서는 앞다퉈 독자적인 입법 청원을 준비해왔다. 생명윤리기본법의 조속한 제정을 위해 종교 및 시민단체들이 구성한 공동캠페인단을 비롯해 개신교 등에서는 정부 부처들을 방문해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면서 독자적 입법청원을 추진해왔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와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생명윤리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천주교 유관부서에서는 최근 들어 여러 차례 국회를 방문해 입법을 서둘러 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2월 5일에도 주교회의 의장 최창무 대주교와 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 송열섭 신부, 사무차장 이창영 신부,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장 김홍진 신부 등은 박관용 국회의장을 직접 면담, 천주교측에서 마련한 생명윤리법 입법안에 대해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은 법안의 조속한 제정 뿐만 아니라 배아 복제의 전면적인 금지가 이뤄질 때 생명윤리법이 실효 있는 법안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인 것이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0월 개최한 공청회에서 치료용 배아 복제를 금지해야 하는 이유로 『배아 관리의 투명성이 확보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관리체계에서는 쉽게 생식 목적의 복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스스로 인정했듯이 배아 복제 전면 금지 없이는 인간 복제 시도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각국 치료 복제 논란 전면 금지 추세로
인간 복제를 금지하는 국제법이나 국제협약은 아직까지는 없다. 하지만 이미 많은 논의 과정을 통해 인간 개체 복제를 금지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다만 금지 범위에 대해 각국의 입장이 차이를 보여 최종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기를 출산하기 위한 인간 복제를 금지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한다. 문제는 치료 목적의 복제를 허용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국제법 문제를 담당하는 유엔 제6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인간 복제 금지 범위를 둘러싸고 독일, 프랑스의 제안과 미국의 제안이 팽팽히 맞서 결국 올해 9월 회기로 문제를 넘겼다. 즉 독일, 프랑스는 생식 목적의 복제만을 금지하자는 제안인 반면 미국은 의학 연구 및 질병 치료 목적의 인간 배아 복제까지 전면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올들어 치료용 배아 복제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인간 복제를 금지하는 법안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2월 6일 현재 의회에서는 이 법안을 심의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이미 지난 회기에 하원에서 전면 금지 법안이 통과됐었으나 상원을 통과하지 못해 폐기됐었다. 하지만 이번 회기에 재상정됨으로써 곧 전면 금지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프랑스의 경우에는 아직 입법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생식 복제는 금지하되 치료 목적의 배아 복제는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이 현재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보르도 대교구장 장 피에르 리카르도 대주교는 이와 관련해 1월 27일 성명을 발표하고 『인간 배아 보호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며 강력한 반대의 뜻을 표시했다.
이처럼 국제 사회에서도 치료용 배아 복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나 배아 복제 전면 금지 쪽에 무게가 쏠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해 11월 스페인이 유엔에 제출한 문서에서도 분명하게 보인다. 이 문서는 스페인과 미국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나이지리아 등 29개국이 공동으로 채택한 것으로 배아 복제 금지 대상에 기존의 생식 복제 뿐만 아니라 치료적 복제까지 모든 형태의 배아 복제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문서는 『만약 치료적 유전자 복제를 금지하지 않을 경우에는 생식을 목적으로 은밀하게 이뤄지는 복제의 길을 터줄 것이며 불법적인 난자 매매가 횡행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배아 생명권을 존중하는 보다 안전한 대안으로서 성체줄기세포 연구』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명백히 생명 존엄 훼손하는 범죄
치료 목적의 인간 배아 복제를 허용할 것인가에 대해 교회의 입장은 분명하다. 인간 생명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서의 생명체이며 따라서 배아 복제 행위는 명백하게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범죄이다.
교황청은 지난해 11월 성명에서 수정을 통해 『배아가 존재하는 첫 순간부터 인간 생명이 시작된다』고 강조하고 『만약 발달 단계에 따라서 생명의 시작을 판단한다면 배아는 태아보다, 태아는 어린이보다, 어린이는 성인보다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논리가 성립된다』고 비난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이에 앞서 담화문을 발표하고 최근 생명과학의 발달로 과학자들이 마치 인간 생명을 조작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듯한 자세를 보인다고 우려하고 특히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인간 배아를 만들고 파괴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 가톨릭의 ‘생명윤리기본법’(초안) 내용
치료.연구 목적위한 배아 복제도 안된다
의원입법안으로 제출 예정
지난해말 생명윤리법 제정 전망이 불투명해짐에 따라 천주교에서는 조속한 입법을 위해 천주교 단독 입법 청원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의원입법안이 더 신속하고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됐고 그에 따라 최근 주교단 명의로 가톨릭 신자 국회의원 모임 회장인 민주당 김덕규 의원과 국회의장 박관용 의원 앞으로 입법 요청서를 전달했다. 김 의원은 이에 따라 빠른 시일 안에 법률적 검토를 거쳐 의원들의 서명을 받고 의원입법안으로 국회에 상정할 것을 약속했다.
청원서는 취지에서 『생명윤리기본법 입법이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못하고 일부에서 단지 인간 개체 복제만 금지하는 형식적인 입법을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천주교측 기본법 초안이 기존의 정부안과 크게 다른 점은 배아 복제의 전면적인 금지 조항이다. 즉 치료용 배아 복제 역시 생명의 존엄성을 크게 훼손하는 행위이며 따라서 인간 개체 복제 뿐만 아니라 치료와 연구 목적을 포함한 어떠한 형태의 배아 복제도 절대적으로 금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총 6개장 21개조로 작성된 법안 초안은 우선 제2조 「생명의 시기 및 인간 존엄성 보장」에서 『인간의 생명은 수정된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근본적인 원칙을 명기하고 『수정란이나 배아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닌 개체로 존중돼야 한다』고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초안은 이어 국민의 권리와 국가의 책무, 생명과학기술 종사자의 책무 등을 규정하고 제7조에서 「인간 복제의 절대적 금지」를 위해 다른 배아, 태아, 살아있는 자 또는 사망한 자와 동일한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배아를 발생시키는 인위적인 조작을 해서는 안되고 배아를 이식하는 행위를 해서도 안된다고 규정했다.
제8조 「인간 배아에 관하여」에서는 4개 항에 걸쳐서 「생체 외에서 인간 배아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행위」, 「인간 배아를 타인에게 양도 또는 매매하거나 이를 제공받아 이용하는 행위」, 「온전한 배아를 인위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했다.
그 외에 초안은 인간의 난자와 동물의 정자, 또는 동물의 난자에 인간의 정자를 수정시키거나 이종간에 체세포 핵이식을 하는 행위의 금지, 유전자 검사 및 치료의 엄격한 법률에 따른 실시와 우생학적 목적의 실시 금지를 규정했다. 또 국가생명윤리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고 생명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르는 윤리와 안전 문제를 총괄하도록 제안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