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라비아 숫자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좌절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가르쳐 준 숫자가 있었다. 「8」자였다. 아무리 손가락을 돌려봐도 꽈배기 같이 꼬인 이 숫자는 제대로 꼬이지를 못한 채 공책을 떠다니고만 있었다. 결국 실추된 자존심을 회복할 심산으로 찾아냈었던 대안은 멋지게 쓴다고 자부할 수 있던 유일한 숫자 「0」을 위 아래로 연결시키는 방법이었다. 삶의 복잡한 문제들은 그렇게 자신이 믿고 있는, 단순하지만 잘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부분들의 결합과 연습 속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별 무리 없이 「8」자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필자는 성문서 개관의 마지막 단계로, 가장 직선적이고 단순한 형태에서 성문서 각 권을 분류하고자 한다. 단순하고 정돈된 시각에서의 접근은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주력해온 부분인데, 하느님의 말씀은 수많은 이념과 이론들의 무모한 추종 속에 터득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찰나, 그 단순하고 사소한 「단숨」에 체험되는 신비라는 것이, 필자가 성서에 대해 가지는 믿음이며 소박한 이해이기 때문이다.
「0」을 붙여 쓰는 단순한 노력을 반복하다보면 「8」처럼 어려운 숫자도 잘 쓰게 되듯이 성서의 복잡한 이면은 「단순한」 질서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히브리 성서의 다른 부분들(모세오경, 예언서)과 달리, 성문서는 여러 문학 양식들을 모아놓은 일종의 「종합 선물세트」(모음집)임을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성문서의 이러한 다중적 성격은 이들을 장르별로 구분하는 작업을 필연적으로 요청하는데, 일반적으로 성문서의 각 권들은 「시문학」, 「지혜문학」, 「다섯 개의 축제 두루마리」, 「묵시문학」, 「역사 문학」의 다섯 가지 범주로 구분되며, 이에 해당하는 책들은 다음과 같다.
1) 우선 「시문학」에 해당하는 책은 성문서의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시편이다.
2) 다음 「지혜문학」에 해당하는 책들은 욥기, 잠언, 코헬렛 등이다. 물론 지혜문학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이 외에도 집회서와 지혜서가 존재하지만 이들은 제2경전에 속하는 책들이고, 제1경전의 성문서 그룹에서는 제외되기에 우리의 고찰 범주에서도 생략하고자 한다.
3) 성문서 세번째 범주에 해당되는 책들은 소위 「메길롯」(Megillot), 즉 「축제 두루마리」라고 불리는 다섯개의 책으로 이스라엘의 주요 축제 때 낭독되던 것들이다. 아가(유월절 때 낭독), 룻기(칠칠절), 애가(아빕월 9일), 코헬렛(장막절 코헬렛은 축제 두루마리에 속하지만 지혜문학의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으므로 지혜문학 부분을 다룰 때 고찰될 것이다), 에스델서(부림절)가 이에 속한다.
4) 묵시문학으로는 구약 묵시문학의 대표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서가 있다.
5) 역사문학에 해당되는 책은 소위 「역대기계 역사서」라고 불리는 책들로서 에즈라, 느헤미야, 역대기 상하가 이에 속한다.
이상에서 소개된 5개 부류는 현재 사용하는 히브리성서의 표준본(BHS)에 수록되어 있는 순서를 따른 것인데, 히브리성서는 시편, 욥기, 잠언, 다섯 개의 축제 두루마리, 다니엘, 에즈라, 느헤미야, 역대기 순으로 성문서 부분을 엮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시작될 성문서 각 권에 대한 구체적 소개 역시 위의 분류와 순서에 따라 진행되게 될 것이다.
처음 지면을 시작할 때, 결과를 모른다는 것은 모든 시작이 가지는 딜레마인 동시에 희망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성문서 각 권의 소개를 통해 독자들 각자가 모색하는 삶과 신앙의 문제들을 풀어갔으면 하는 바람, 아마도 글을 연재하는 동안 필자가 내내 간직하게될 기대요 희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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