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나이에 등단해 어느덧 고희를 훌쩍 넘긴 소설가 박완서(정혜 엘리사벳.72)씨. 이제껏 수십여 권의 소설과 에세이를 선보이며 우리 시대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사랑 받고 있지만, 그가 초창기 시절 많은 콩트를 썼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최근 개정판으로 출간된 「나의 아름다운 이웃」(작가정신/292쪽/8500원)은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참으로 각별한 의미를 갖는 책이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작가 스스로도 『창호지에 바늘구멍을 내고 바깥세상을 엿보는 재미』라고 표현할 만큼, 우리네 평범한 삶 속에 숨어 있는 기막힌 인생의 낌새들을 포착해낸 콩트집이다. 박완서 작품의 특징인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지만, 「중산층의 허위의식과 속물성 비판」이라는 점에서 이 책도 여지없는 「박완서표 소설」이다.
한치의 양보 없이 세상물정을 야멸차게 꼬집는 듯 하면서도, 종내는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특유의 문체는 작품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모두 48편의 단편 소설로 이뤄진 콩트집은 70년대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한 70년대 산물이다. 그러나 작가는 『책 곳곳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이 여기저기서 눈에 거슬리지만, 일부러 고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오히려 독자 입장에서는 문단에 나온지 10년이 채 안된 신진작가 시절의 박완서가 가지고 있었던 재기 발랄한 감수성과 비판의식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 에피소드들을 자연스럽게 인간 본연의 도리에 대한 깨우침으로 연결시키는 이야기 솜씨는 역시 대가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추억과 낭만에 젖어 찾아 나선 처녀 시절의 옛 남자들이 이제는 현실에 찌든 속물들로 변해 있음을 깨닫게 되는 「마른 꽃잎의 추억」, 아파트 생활의 삭막한 인간관계를 꼬집은 「아파트」, 외국어에 주눅들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하는 「외래어 노이로제」 등은 우리가 익히 아는 장편이나 단편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지, 풍자, 유머가 가득해 박완서 문학의 또 다른 묘미를 전해준다.
또 정신박약아 아들을 수치심 때문에 집안에 숨겨놓은 채 살아가는 이웃집 아줌마의 닫힌 마음을 이웃간의 정으로 녹여준다는 내용의 「달나라의 꿈」 등은 현실 비판이나 풍자에만 머물지 않고 삭막한 사회 현실 속에서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훈훈한 정과 미담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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