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어머니의 입에서 늘 흥얼거림을 들을 수 있던 노래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였다. 아마도 아버지가 불러주지 않는 노래를, 어쩌면 불러주지 않았기에 더 더욱, 어머니 스스로가 불렀을 노래이다. 어렸던 나는 어머니가 아내인데 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는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는 아내는 필자의 어머니 뿐만이 아니었다. 주부 가요열창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즐겨 불리던 애창곡 1위는 언제나 그 노래였으니 말이다.
결국 아내들은 남편들이 불러주지 않는 노래를 스스로라도 부르면서 한 많고 눈물 많던 아내의 길을, 그래도 씩씩하게 가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지금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 노래는 각 시대의 아내들을 위한 감성적 지표였으며, 아내 자신들이 만들어 낸 일종의 「시편」이었다고 말이다.
지난 주까지 성문서 전체를 개관했던 우리는 이제 그 구체적 접근의 시작으로 「시편」을 살펴볼 순서에 와 있다.
일반적으로 시편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제나 수도자들이 경직된 침묵과 절제된 통일성 속에 함께 소리를 맞추어 부르는 성무일도가 연상되고, 그래서인지 시편은 전문 종교인들에게만 국한된 범접할 수 없는 「어려운 기도」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 듯 하다. 하지만 성서는 하느님의 보편적 계시이며 그 계시는 모든 인간을 위한, 그리고 인간 누구나를 담고 있기에, 성서의 그 어느 부분도 특권적 소수에게만 편향되어 있는 구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편 역시 소수 특정인들에게만 유보되어있는 전문적 기도라고 단정될 수 없고, 오히려 평범하고 기도를 잘 하지 못하는 누구에게라도 열려져 있는 쉬운 기도라고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기도 하다.
시편은 원래 일종의 가락을 지니고 있던 노래였다. 노래가 글(文)보다 쉽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일 것이다. 글을 읽을 줄 모르시던 할머니시지만 「닐리리야」를 완벽하게 부르시던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고, 한글을 읽을 수 없는 꼬마라 하더라도 만화영화의 주제가가 시작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TV 앞에 서서 가장 진지한 자세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을 가정마다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노래와 가락이 글 또는 이론보다 얼마나 강하게 인간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지를 증명해주고 있다.
사실 음악, 노래, 시라는 장르는 불특정 다수 혹은 개인의 존재론적인 정서를 가장 잘 대표해 준다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문자가 생기기 이전, 인간의 정서는 대부분 노래를 통해 표출되었고, 노래와 가락은 논리와 공식 안에 온전히 담길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찬미, 사랑, 승리, 절망, 탄식, 탄원, 고통을 무엇보다 솔직하게 표현해 주는 정서적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편은 문자와 신학에 이스라엘의 신앙이 갇히기 이전, 자신의 삶, 신앙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정서로 표현했던 민중적 노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존재론적 지표가 되었던 이 노래와 기도, 시들은 문자의 대중적 유통과 함께 문서화되어 성서 안에 편입되게 되는데 이렇게 글로 적어 보존된 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대하고 있는 성서의 시편인 것이다.
결국 우리의 엄마들이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처지와 신분을 능동적으로 모색하려 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은 그들의 신변과 정체성이 위기를 맞이했을 때마다, 오랜 옛날부터 그들의 선조들이 불러왔던 노래를, 그리하여 가장 이스라엘다운 노래들을 부르면서, 줄곧 잊고 지내왔던 하느님 체험과 그로 인해 깨닫게 되었던 삶의 희망, 사랑, 순수, 고뇌를 다시 기억하고 하느님 백성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곤 하였는데, 이것이야말로 시편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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