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위해 본원으로 가던 중
사고 초기 부상자 명단에 올랐던 김유진 수녀와 마리안나 수녀는 같은 사람으로 확인됐다.
예수성심시녀회 소속 김유진(마리안나) 수녀는 피정을 위해 본원으로 가던 중이었다. 김수녀는 사고 당시 희생자가 많았던 맞은편 전동차 4호 객차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전동차가 사고역에 진입하면서 불길을 느낄수 있었고, 순간적으로 위험을 직감했다.
김수녀는 읽던 책을 덮어 가방에 넣고 주머니에 있던 묵주를 한 손에 꼭 쥐고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전동차가 도착한뒤 잠시 문이 열렸고 그 사이 유독 가스가 차안에 가득 찼으며 문은 다시 닫혀버렸다. 김수녀는 조심스럽게 1호 객차로 옮겨갔고 마침 열린 문이 있어 빠져나왔다. 유독 가스와 암흑 천지인 지하 3층에서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한다고 생각하고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으며 다행이 구조대의 전등인지 비상등인지 모르지만 희미한 불빛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승객 3명과 함께 그 불빛에 의지해 지상으로 나온 김수녀는 그제서야 정신을 잃고 쓰러졌으며 깨어보니 경북대병원이었다. 호흡기 계통에 손상을 입은 김수녀는 다행이 큰 부상은 아니어서 사고 다음날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포항성모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고 있다.
#객차 상황, 카메라로 촬영한 류호정(스테파노)씨
“하느님께서 모두를 위로해 주길”
▲ 류호정씨
화재 발생 직후 연기와 유독가스로 가득 찬 객차 내의 급박한 상황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세상에 알린 류씨는 누구보다 희생자들의 소식에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처음 전동차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을 때는 바깥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해 승객들은 빨리 열차를 출발시키라고 고함을 쳤어요. 연기가 마구 스며들자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두어번 눌렀는데 유독가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연기와 유독가스는 순식간에 퍼졌고 어두움마저 엄습했다. 문이 열리지 않아 1호 객차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바로 옆사람도 구분이 안되는 어둠 속에서 1호차의 열려있는 문으로 빠져나와 몇몇 사람들과 함께 그대로 앞으로 달렸다. 다행히 반월당역 입구쪽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지하도를 빠져나왔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취미로 사진촬영에 애착을 가졌고 최근부턴 디지털 카메라를 소지하고 다닌 덕분.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인 류호정씨는 다행히 큰 외상은 없으나 유독가스로 인한 호흡기 손상으로 당분간 치료를 계속해야한다.
류호정씨는 방화범에 관해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할 자격도 없고 그분도 험한 세상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니 안타깝다』며 『하느님께서 모두를 위로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지은씨와 아들 박준연.준성군
“엄마가 빨리 낫길 바래요”
지하철 참사 피해자들의 병실에 들어서자 힘겨운 기침소리가 연신 이어지고 있었다.
입원 환자 중 한사람인 전지은(가타리나?35?반야월본당)씨도 성대화상 및 폐?기관지 손상으로 바로 옆에 앉은 사람에게도 들릴 듯 말 듯한 작고 쇳소리 섞인 목소리만 겨우 낼 수 있어 긴 말은 글로 써야할 정도였다. 회복 이 돼도 예전과 같은 목소리를 내긴 힘들다고 한다.
전지은씨는 1080호 열차에서 두 아들을 데리고 아비규환인 지하구덩이를 탈출했다. 사고 당시 전씨는 6살, 9살 난 아들 둘을 데리고 지하철 영대병원역 근처 외가댁에 가는 길이었다.
중앙역 정차 중에 누군가가 불을 질렀다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아들들을 구해야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일단 1호 객차 쪽으로 움직여 열린 문을 통과했다. 그러나 어둠과 매연 가득한 지하 구덩이에서 입구를 알 수가 없어 정신없이 헤맸다. 엎어지고 부딪히고 긁히기를 수차례.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멀리서 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둘째아들을 움켜안고 큰아들의 손을 꼭 쥐고 그쪽으로 내달려 구조대원의 도움을 받았다.
▲ 어느정도 회복된 준연군(오른쪽)과 준성군이 병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유독가스 속에서 입을 벌려 소리를 지른 때문에 전씨의 호흡기와 성대는 심하게 손상됐다. 다행히도 두 아들 박준연(마르티노?9)?준성군은 회복이 빠른 편이다. 박준연군은 『앞이 안보이고 무서웠지만 엄마만 따라 달렸다』고 설명하고 『엄마가 빨리 나으시길 기도한다』며 의젓한 모습을 보여줬다.
전씨는 방화범과 평소 안전관리에 미흡했던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원망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유명을 달리한 이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에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그 암흑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느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고 말한 전씨는 앞으로 자원봉사 등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많이 걱정해주시고 기도해주신 신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또 전씨는 『유족들은 물론 부상자들의 사고 휴유증에도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구 지하철 방화범 목격자 전융남(요셉)씨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악몽”
▲ 오른손에 화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 중인 전융남씨가 당시 상황을 재현해 보이고 있다.
『중앙로 역 바로 전 승강장인 반월당 역에서부터 앞에 앉은 사람의 행동이 이상해 보였습니다. 오른쪽에는 청색 가방을 끼고 있었는데 안에는 플라스틱 우유통이 들어있었으며 오른손이 불편한 듯 왼손으로 뚜껑을 만지작거리는데 제대로 열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씨는 「목이 타서 우유를 마시려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오래 전부터 부인이 중풍으로 앓아 손을 제대로 쓸 수 없었기에 이 사람 또한 그러는 것 같아 측은한 마음이 들어 도와주려 했다.
『한데 그 사람이 왼쪽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더니 켰다 껐다 하더군요』 『저는 깜짝 놀라 왜 거기서 위험하게 라이터를 켜느냐고 소리쳤어요』
전동차가 반월당을 지나 중앙로 역으로 진입하던 때였다.
그 순간 『퍽』하는 소리와 함께 그 사람이 안고 있던 플라스틱 통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 사람이 들고 있던 통은 바닥에 던져졌고 그 자신도 다리에 불이 붙어 고통스러운 나머지 승강장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불길은 지하철 의자부터 순식간에 타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우선 이 사람부터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웃옷을 벗고 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객차안의 불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순간 지하철 구내역의 전기는 나가고 암흑에 휩싸였으며 매캐한 연기가 전씨의 코를 파고들었다.
『독한 냄새 때문에 겨우 옷으로 입을 막고 엉금엉금 기다시피해 지하철을 빠져나왔습니다. 정말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악몽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전씨는 경찰에 자신이 겪은 일을 진술함으로써 사고발생 2시간 여만에 용의자를 검거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