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8일 오후 대구 반야월본당 주임 맹봉술 신부는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배은호씨(영천본당)의 딸 소현양이 지하철 사고로 실종됐다는 소식이었다. 『아이구, 그러냐!』 『어쩐 일이냐』하며 안타까움을 전하고 저녁미사 마치고 가겠노라고 했다. 뉴스를 통해 시시각각 소식을 접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큰 사고인지, 또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피해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저녁미사후에 신자들 몇몇과함께 유족들이 모여있는 시민회관을 찾았다. 배은호씨를 만나 위로하고 딸이 실종된 사연을 듣던 맹신부는 그때서야 『아차!』하며 사고의 심각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우리 신자 피해도 있을 거야」하는 생각이 불길하게 엄습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본당 관할 구역내에 지하철역이 6개나 있고, 사고 전동차가 이들 역을 지나갔기 때문이다.
다음날 반장들을 통해 실태 파악에 나섰다. 역시나 유정희 이경희 원팔용씨가 함께 실종되고 이규창씨가 부상당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병원을 찾았으나 면회가 불가능했고, 유족 대기소로 갔으나 유가족들과 연락이 닿지않아 만날수가 없었다. 본당 신부로서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일에 대한 수습과 대처 방법 등을 같이 고민해야된다는 마음은 앞서는데 만날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맹신부는 매일 오전 오후 병원과 유족 대기실을 오가며 혹시나 본당 신자들을 만날수 있을까 발이 닳도록 쫓아다녔다.
로만칼라를 한 사제여서 눈에 잘 띄었을까? 여기 저기서 『신부님!』하며 품으로 뛰어들었다. 본당 신자 김영순씨가 딸을 잃었다며, 냉담중이었던 방길순씨가 실종됐다며 친척들이 울면서 매달렸다. 이런 세상에, 본당 신자 피해가 4명뿐인줄 알았는데 6명으로 늘어났다. 마음 굳게 먹자고, 함께 기도하겠다고 위로는 했지만 그 이상 아무 것도 할수 없었다. 그들의 큰 절망앞에 너무나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유가족들의 울음은 한 사제 앞에서 더 커져갔고, 눈물은 그칠줄 몰랐다.
맹신부의 발걸음은 더 바빠졌다. CCTV를 통해 탑승자를 확인하려 지하철역을 찾기도 하고, 반장들을 독려해 신자들의 집을 일일이 다 확인하게 했다. 특히 할머니 혼자 사시는 분도 많아 연락이 닿지않으면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연고 가족을 물어 물어 확인했다. 유족대기소에도 본당 신자들과 함께 찾았다. 혹시라도 더 있을지 모르는 피해자를 빠트리지 않기위해서였다. 이런 와중에 타 본당 신자들도 위로해줘야 했다.
사고 나흘째, 여전히 유족대기소를 찾아 피해 신자들을 위로하던 맹신부는 아는 수녀를 만났다.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동생이랑 조카 둘이가 부상을 당해 입원 중이라며 반야월본당 신자라고 말했다. 이런 청천벽력이 있나, 그렇게 확인했는데 부상자가 또 3명이나 나오다니. 나중에 알고 보니 도저히 연락이 닿지않아 확인을 못한 집이었다.
5명 실종에 4명 부상. 앞으로 또 얼마나 나올 것인지, 제발 그만 나왔으면하는 간절한 염원을 안고 맹봉술 신부는 오늘도 유족대기실과 병원을 오가고 있다. 23일 주일에는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해 본당과 유족대기소 현장에서 추모미사를 마련, 「눈물의 미사」를 봉헌하기도 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