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젊은이들이 많이 참석하는 미사에서는 이른바 생활성가를 미사 때 사용하면서 밴드를 동원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처럼 국악이나 민요풍의 노래,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경쾌한 대중가요와 팝송의 분위기를 띠고 있는 생활성가들이 미사 전례 안에서 사용되는 것은 이제 그리 낯선 모습은 아니다.
물론 그레고리오 성가를 포함한 전통적인 교회 음악에 견주어 이런 음악들을 교회 음악으로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논란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시대와 지역에 따른 토착화의 일환으로 이러한 시도들은 계속되고 있으며 또한 계속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필요성과 의미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은 전례의안 제214항에서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에 적합한 성가와 전례용 기악곡 등이 부단히 창작 보급되도록 할 것』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전문적인 기구가 설치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레고리오 성가와 다성곡이 존중될 뿐만 아니라 신자 대중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종교적 대중 성가도 적극 장려』할 것을 강조하는 한편 파이프 오르간이 교회의 전통적인 악기로 크게 존중돼야 하지만 『한국의 전통 악기 사용도 신중히 검토, 시도되어 새로운 한국 교회 음악의 터전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 헌장에서도 이같은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전례헌장 119항은 『특히 선교지역의 국민들은 그들의 종교 생활이나 또는 사회 생활에 있어서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고유한 음악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며 『그들의 종교적 감정을 형성하기 위해서나 그들의 특성을 전례에 적응시키기 위해서, 그들의 음악에 정당한 평가와 합당한 자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 120항에서는 전통적인 악기로서 파이프 오르간을 높이 평가하고 『다른 악기는 교회 당국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성스러운 용도에 적합하거나…신자들의 신심 계발에 도움이 된다면 전례에 이용할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본 정신에 입각해 그 동안 교회 안에서는 참으로 한국인의 심성에 적합한 음악이 무엇인가를 찾는 시도를 부분적이나마 지속적으로 해왔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서구 교회에서 발달한 교회 음악의 모습을 벗어난 국악이나 현대 음악들을 전례에 도입하거나 꼭 전례가 아니더라도 찬양과 찬송의 자리에서 종종 연주하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전례 헌장과 1967년 「거룩한 전례 안에서의 성음악에 관한 훈령」에서 성가의 목적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즉,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하느님 백성의 상호 일치, 그리고 하느님 백성의 성화가 바로 성가의 목적이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목적과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 때 어떤 음악이든지 전례 음악에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 공의회의 입장이다.
한국 교회 음악 토착화의 경과
한국에서 가톨릭 성가집이 발간된 것은 1924년 「죠션어셩가집」이 처음이다. 이어 대구교구에서 1928년 남산동성당에서 「공교셩가집」이라는 프린트로 된 성가집을 발간했고 1936년에는 「조선어성가집」이 나왔다. 1938년에는 원산교구의 덕원신학교에서도 성가집이 나왔는데 197곡의 우리말 성가와 그레고리오 성가가 수록돼 있었다.
한국말로 된 성가가 정착되기 전에 그레고리오 성가가 불려졌던 것은 당시 교황청에서 가톨릭의 모든 전례에 그레고리오 성가를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그 외에 지역의 고유 성가를 사용하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1962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 때까지 계속됐다.
이후 오르간 반주용과 혼성 4부 합창을 위한 「가톨릭 성가집」이 1948년과 1951년 서울과 대구에서 각각 발간됐다. 특히 1948년 서울에서 발간된 성가집에는 그레고리오 성가에도 오르간 4성 반주가 첨부됐고 이문근 신부의 자작곡인 「복자 찬가」가 수록돼 있다. 이 성가집은 한국 가톨릭 성가의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정선가톨릭성가집」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정선가톨릭성가집」은 라틴어 발음을 한국말로 옮기고 오선악보로 표기된 전례용 그레고리오 성가곡 외에도 128곡의 한국말 성가가 수록돼 있었는데 특히 신원식, 최민순 신부가 작사하고 이문근 신부가 작곡한 「복자찬가」, 「데레사의 노래」, 「복자 안드레아 김신부의 노래」, 「혼배미사곡」 등 한국 특유의 곡들이 첨부돼 있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각 지역교회가 고유한 자기 지역의 언어로 전례를 거행할 수 있게 되면서 전례와 이와 결합된 교회 음악도 토착화의 과정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1973년 주교회의는 「성가의 대중화 보급」을 추진하고 이에 따라 각 수도원과 성당, 신학교 등에서 고유한 성가집들을 발간한다.
대표적인 예로 1975년 3월에는 개신교의 찬송가와 팝송, 재즈, 가스펠송, 흑인 영가 등이 수록된 「가톨릭 공동체의 성가집」이 발간되고 같은 해 5월에는 「정선가톨릭성가집」과 「가톨릭공동체의 성가집」에서 뽑은 곡 외에 새로운 곡들이 첨가된 「새전례가톨릭성가집」이 나온다. 이어 11월에는 이문근 신부가 작곡한 3가지 형태의 창미사곡이 「정선가톨릭성가집」에 첨부된다.
▲ 교회 음악의 토착화가 단지 음악이라는 한 가지 측면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민의 심성 등 다른 요소들과의 융합과 조화가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사진은 연풍성지에서 봉헌된 국악미사에서 우리소리 관현악단의 연주 장면.
국악 미사곡, 생활성가 선보여
한편 이처럼 왕성한 성가집의 발간과 함께 전문가들은 교회 음악이 과도하게 세속 음악적 요소로 오염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즉 공의회의 지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사제, 성가대, 일반 신자의 몫이 혼동돼 모두 신자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오인되거나, 곡의 배경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가락만 아름다울 경우 전례음악에 도입할 수 있다고 오해했다는 것이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토착화에 대한 한국교회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특히 국악 성가와 미사곡에 대한 시도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1988년 예수고난회 강수근 신부가 처음으로 국악 미사곡을 작곡했다. 이러한 시도들은 서양에서 전래된 가톨릭을 보다 정감있게 받아들이고 전례를 한국적 심성에 맞게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후 90년대 들어 지금까지 꾸준하게 교회 안의 이곳저곳에서 국악 성가와 미사곡들이 시도됐고 일부 본당에서는 지금까지 꾸준하게 매주 한 차례씩 국악 성가와 미사곡으로 「한국미사」를 봉헌하기도 한다.
한편 70년대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생활 성가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널리 불리워지기 시작했다. 1974년 성바오로딸 수도회에서 외국곡을 번안한 앨범 「세상에 외치고 싶어」를 처음 내놓으면서 시작된 생활성가의 바람은 8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됐다.
생활성가에 대한 교회의 평가는 아직도 논란이 된다. 청소년들에게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도 이를 전례 안에 도입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생활성가측에서는 아직 무르익지 못했을 뿐 적절한 지원과 관심으로 활성화될 때 전례에 어울리는 영역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크다는 주장이다.
교회 음악 토착화의 과제
▲ 교회 음악의 토착화가 단지 음악이라는 한 가지 측면만으로 이뤄져서는 안될 것이다.
즉 크고 작은 박해를 겪으면서 성장을 할 수 없었던 한국 천주교회는 박해속에서도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천주가사를 만들어냈다. 주로 4?4조 형식의 이 가사는 엄밀히 말해 가톨릭 성가라고 할 수는 없고 전례적인 목적을 갖고 있지 않지만 교화와 수도의 목적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성가의 범주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측면을 갖고 있다.
전승 과정에서도 여러 문제점을 갖는 등 많은 논란점을 안고 있지만, 천주가사는 한국인의 신앙을 일치시킨 한국 가톨릭 성가의 모태라는 점만은 별다른 이의가 없다. 이처럼 토착화에 관해서 한국교회는 초창기 교회의 모범을 본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어떤 전문가는 한국 교회 음악의 토착화를 위한 선결 과제는 서양 음악만이 전례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 역시 교회 음악이란 무엇이며 교회 음악의 필수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등의 문제가 명확하게 정립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교회 음악의 토착화가 단지 음악이라는 한 가지 측면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학문과 주위 환경, 한국민의 심성 등 다른 요소들과의 융합과 조화가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음악 토착화를 위한 보다 구체적인 과제에 대해 일선에서는 전담 전문 기구 설치와 성가대의 육성이 강력하게 요구되고 있다.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에서도 이에 대해 명확하게 촉구하고 있다. 즉 전례 의안 213항과 214항에서 의안은 「성가대의 부단한 육성」과 교회 음악 교사 또는 지도자들의 훈련, 전문적인 기구 설립을 권고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관계 전문가들은 다양한 토착화 시도들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과 협력을 촉구한다. 좋은 창작곡이 나왔을 때 이를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일부에서 실험적으로 시도되는 토착화에 대해서 무조건 백안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시도들이 교회 관련 기구의 검토 절차를 거쳐 교회 음악으로서의 가치를 평가하고 적절할 경우 그 시도를 적극 지원하고 관심을 가져줄 때, 현대 사회와 우리 민족의 심성에 걸맞는 교회 음악의 토착화가 꾸준하게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