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녘 땅 명동성당에서 두 손을 맞잡고 「하나의 믿음」을 고백한 남북의 신자들 사이에는 그 무엇에도 비견할 수 없는 뜨거운 형제애가 흘렀다. 반세기 동안 쌓여만 가던 불신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낸 2박3일간의 현장을 담았다.
소성당 참배에 끝내 눈물…
○…3월 2일 오전, 분단 이후 최초로 한국교회의 상징인 명동성당을 방문한 조선카톨릭교협회 장재언 위원장과 평양 장충성당 성가대 등 17명의 북한 신자들은 남한 신자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북녘 땅 신자들을 처음 맞이한 명동성당 신자들은 예수성심상과 성서 등을 선물로 건네며 마음을 전하기도. 백남용 신부의 안내를 받으며 명동성당을 둘러본 장위원장 일행은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돼있는 지하 소성당을 참배하고는 끝내 눈물을 터트리기도.
한바탕 웃음 ‘역시 내 형제’
○…이어 북쪽 신자들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김운회 주교를 예방해 북녘 신자들의 마음을 전했다. 집무실이 비좁아 기자단을 내보낸 뒤 이어진 환담에서는 문밖까지 큰 웃음소리가 서너차례 터져 나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전해주기도.
“자주 오갈 수 있기를”
○…명동성당 문화관에서 이어진 남북 신자들의 만남의 자리에서 장충성당 성가대는 상기된 얼굴로 「반갑습니다」를 불러 남쪽 신자들의 환대에 감사함을 표했고 앙코르 신청에 즉석에서 「우리는 하나」를 불러 흥겨운 한마당을 연출하기도. 이 행사에서 북한의 형제들을 향해 누구보다 힘차게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있었다.
6.25를 전후해 고향을 등져야 했던 「평양교구 신우회(회장=최용익)」회원들이 그들. 장재언 위원장과 한 동네에서 자라고 같이 평양 성모국민학교를 다녔다는 서정식(요셉.83.용인 죽전본당)씨는 『오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길을 와 너무 기쁘다』며『이렇게 자주 오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분단 후 첫 합동미사
○…분단 후 처음으로 남북한 신자가 함께 명동성당에서 봉헌한 미사에는 통일을 향한 간절한 염원이 깃들여 있었다.
오전 11시 700여 남한 신자들과 미사를 함께 봉헌한 북한 신자들은 미사 중에도 고개를 돌려 성당 곳곳을 살펴보는 등 감격과 기대에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미사를 주례한 김운회 주교는 『하루 속히 북한에 사목자가 거주함으로써 한반도 전역에 걸쳐 모든 신자들이 온전한 성사 생활이 가능하기를 빈다』며 『굳건한 신앙생활과 우리 모두가 한 핏줄임을 잊지 말고 하느님의 은총을 기원하자』고 말했다.
김유철 장충본당 부회장은 미사 후 인사말을 통해 『비록 짧은 만남이지만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은 우리 안에 간직돼 있다』며 『머지 않아 통일의 광장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다리며 통일을 앞당기는 성업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8명의 장충본당 성가대는 남한 신자들 앞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초대원장으로 6.25 때 희생된 장정온 수녀가 역사(譯詞)한 「평화의 기도」를 불러 화해의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북한에 성직·수도자 파견되길
○…이날 오후 5시,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종단별 상봉모임은 다시 한번 남북 신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확인케 한 자리였다. 보수와 진보 진영이 제각각 3.1절 행사를 여는 가운데 자칫 파열음이 들릴 수도 있었던 행사에서 신자들은 가슴 깊은 곳에 묻어놓았던 마음마저 드러내는 진솔한 모습으로 3.1운동정신의 현대적 계승에 힘을 쏟았다.
이 자리에서 남쪽 신자들은 북한에 사제와 수도자를 파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했고, 장재언 위원장은 노력하겠다는 말로 화답했다. 행사를 지켜본 김운회 주교는 『남북의 신자들 사이에 숱한 물리적 장벽이 있지만 신앙 안에 하나』라고 강조하고 『잦은 만남을 통해 신앙인의 참모습을 살려 나가고 신앙 안에서 우애를 다지는 물꼬가 되길』기원했다.
한형제임을 깊이 되새겨
○…이어 이날 밤8시,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 야외 제이드가든에서 열린 「평화통일 기원의 밤」행사는 인류 평화를 위한 특별한 소명으로 부름받은 종교인들의 몫을 돌아보게 한 장이었다.
각 종단으로부터 참여한 700여명의 종교인들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향한 염원을 담은 촛불을 밝혀냈다. 행사를 함께 한 이들의 마음은 오롯이 하나, 「평화의 사도로 나서자」는 것이었다.
행사에 함께 한 조선카톨릭여성회 리산옥(카타리나) 회장은 『늘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남쪽 신자들의 모습에 감사드린다』며『한 형제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고 돌아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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