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텍쥐뻬리는 「어린 왕자」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소망과 부조리한 현실과의 극복할 수 없는 괴리를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한 바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라고…. 봉인되고 경직된 현실의 한계를, 오히려 아름답고 서정적일 수 있는 문구로 표현한 이 구절은 모든 이들의 공감을 받으며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주 인용되고 있다.
정말 그렇다. 한 인간의 진실과 삶, 그가 살았던 역사는 논리적 공식과 학술적 업적만으로는 모두 다 담아낼 수 없다. 그를, 그 사건을, 그리고 그 시대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지표는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럽게 배출된 것,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예를 들어 민담, 노래, 선율, 가락, 속담 등)인 경우가 많은 데, 노래와 멜로디, 각 예술 작품들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들은 인간의 억압되지 않은 정서를 담음으로써 언어와 이론 안에 갇힐 수 없는 인간을 가장 존재론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래와 가락, 꾸밈없는 기도로 이루어진 성서의 시편은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존재론적 표현」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독재로 이어졌던 공화국 시절, 특히 5공과 6공의 무거운 공기 속에 감금되어 있던 「젊은 피」들이 전국의 대로를 누비면서 화염병의 숨막힘과 고문의 위협을 이겨내기 위해 불렀던 노래들을 우리는 70년대 후반, 80년대와 함께 기억하고 있다. 「광야에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라는 노래들이다. 불평등한 노동의 현장과 폭력으로 점철된 사회적 억압이 갖게 한 피맺힌 목소리를 최루탄 공기 속에 뿌려가며 불렀던 노래, 그러므로 그 노래들은 공화국 시절의 생명과 숨을 가장 잘 묘사해 줄 수 있는 일종의 시대적 지표였다. 그리하여 여전히 기생하고 있는 이 사회의 구조화된 악을 조금이나마 반성하고, 그 때의 절실했던 긴장과 순수를 다시 기억하고자 할 때 우리를 정리시켜 줄 수 있는 가장 직접적 열쇠는 사실 그 어떤 학자의 화려한 이론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을 합하여 부르는 「광야에서」 한 소절일 수 있는 것이다.
시편은 이러한 맥락과 동일한 배경을 갖는다. 유배 중에 있던 이스라엘이 조국을 잃고, 자신의 뿌리를 잃고, 모든 것을 상실했을 때, 그들이 그래도 이것만은 잃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유다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였고, 한순간을 살아도 하느님을 심장에 새기고 그 심장에서 도는 순결한 피로 살아야 한다는 결연한 각오였다.
이렇게 유다인으로서 살아남으려는 존재론적 투쟁 속에서 그들을 하나로 묶어 주던 것은, 남의 나라 땅에서 서로가 함께 손을 잡고 부르던 그들만의 노래, 「시편」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시편을 읽고 노래함으로써 그들의 조상이 가졌던 신앙, 그들의 조상이 체험했던 그 해방 사건(출애굽)을 기억하고 이를 현재의 척박한 현실 안에서도 재현하고자 했던 것인데, 이것이 바로 시편이라는 오래된 노래와 기도를 정확히 보존하며 오늘날까지 전수하게 했던 가장 궁극적 원인이었던 것이다.
너무 어렵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시편을 대하는 것은 평범한 삶의 자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성서의 시편에 대한 타당한 이해가 아니며, 오히려 우리가 설정한 일종의 고정된 선입견에 하느님의 계시(시편)를 감금시키는 행위일 수 있다. 시편이 우리 모두의 노래임을, 즉 고통스러울 때, 기쁨에 넘칠 때, 서로 마음을 합하여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 불렀던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신앙적인 이스라엘의 노래, 시, 기도였음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