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우리 사회를 눈치와 사적 관계가 중요시 되는 사회라 정의합니다. 원리원칙과 합리적인 가치보다는 강자의 마음과 의중을 더 중요시하고, 관계에 의해 원칙과 가치가 다르게 해석되어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같은 모습은 민족성과도 관계가 있는데 아래의 예가 그 모습의 일부를 보여줍니다.
임진왜란 전 정부는 일본의 정황을 살피러 사신을 파견합니다. 이 때 사신들은 객관적인 정보를 가지고 침략의 유무를 논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관상으로 침략여부를 판단합니다. 한쪽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눈의 광채로 침략할 것으로 판단하고, 또 한 쪽은 쥐처럼 생긴 눈을 보아 쳐들어 올 인물이 못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당파싸움이란 개인적인 관계가 놓여 있었지만 말입니다.
창의 길이나 군사력, 관원들의 흐트러진 모습과 경제적 궁핍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모습을 정탐해 간 일본 사신들과는 분명 차이가 납니다. 「눈치」가 아니라 「양식」과 「상식」이, 사적 관계가 아니라 「합리적 기준과 원칙」이 중요시 되는 사회, 기득권층의 검은 관계와 뒷거래가 양성화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와 교회가 가야할 개혁의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은 성전정화 사건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다인들만 들어가는 이스라엘 마당과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이방인 마당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오늘 복음의 배경이 되는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판매하고 환전상들이 있던 장소는 이방인의 마당이었습니다.
여기서 소와 양 비둘기를 팔고 환전을 해주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편리한 점이 있었습니다. 순례자들이 먼 곳에서부터 제물을 가져온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불편하기에 가까운 곳에서 제물을 구입하여 봉헌하는 것은 경제적, 시간적으로도 매우 편리하고 많은 면에서 장점이 있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당시 통용되던 로마 은전(데나리온)과 그리스 은전에는 인물상과 황제 숭배적인 문구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성전세(약 2 데나리온, 반 세겔)로는 적절하지 않아 이스라엘 은전인 세겔로만 바치게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당연히 환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상인들과 환전상들을 내쫓으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상행위안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검은 관계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성전에서 장사는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니라 허가받은 자들만의 몫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필연적으로 임대차와 관련하여 검은 돈들이 공식?비공식적으로 오가게 되었고, 또 사제들과 성전관리자들은 성전시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구입한 예물에 대해서는 율법의 규정을 까다롭게 적용함으로써 성전 시장의 독점을 가져왔고, 그로인해 얻어지는 이득은 검은 거래의 당사자들이 나누어 배를 채웠던 것입니다. 이제 성전시장은 더 이상 성전 예배를 위한 편의의 장소가 아니라 권력과 관련된 검은 거래와 부정부패가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온상이었기에 예수님은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 질타하고(마태 21, 13)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을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바는 「성전과 하느님」을 개인적 욕심의 충족 수단이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교회의 대형화와 상업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교회를 다른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오늘의 우리가 냉정히 묵상해 볼 교훈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현존 그 자체입니다. 하느님은 예수님 안에 계시고, 또 예수님을 통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사람들이 구원을 체험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성전이라 하신 말의 의미는 성전은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곳이어야 하고, 성전은 하느님이 당신을 드러내시고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 구원을 체험하는 거룩한 장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구원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 물욕과 부정이 자리하지 않는 거룩한 장소」. 예수님이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요구하는 교회의 모습이요, 더 많은 소유와 소비, 실용과 쾌락이 중심이 되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가 꾸며가야 할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albinos1@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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