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간의 고독」. 콜롬비아 출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표작이자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던 작품의 제목이다. 대학 몇 학년쯤이었는지 모르겠다. 도서관에서 그 책의 제목을 발견한 순간 다가오던, 숨이 멎을 것만 같던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세상에, 백년 동안의 고독이라니…. 그 긴 세월을 껴안고 숨죽이고 웅크리고 앉아있었을 고독을 만난다는 것은 경외스러운 일이었지만, 동시에 외면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 힘든 고독이 버거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성서」는 그러한 숨죽인 고독 이상의 존재론적 투쟁을, 백년 간이 아니라 천년간의 고독이라는 제목에도 걸맞을 만큼 끈질기게 모색한 책이다. 더욱이 시편의 경우, 구전으로 내려오던 기간을 염두에 둔다면 천 오백,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동안을 동일한 주제를 진지하고 엄숙하게 모색하며 삶을 견뎌온 이들의 고결한 숨이 품어져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시편의 명칭과 기록 연대, 저자 등을 개관하면서 이렇게 깊은 경륜이 깃들어 있는 시편의 정체에 조금 더 접근해 보도록 하자.
명칭
1) 시편을 히브리어로는 「터힐림」이라 하는데, 이는 「찬양의 노래들」이라는 뜻이다. 시편은 때때로 「찬양가들의 책」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서 「찬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터힐라」는 「할렐루야」(「할렐루」(찬양하여라) + 「야」(야훼를)의 합성어)와 같은 어근(할렐, hallel)을 공유하는 명사이기도 하다.
2) 시편을 희랍어로 번역하면서는 「프살모이」(Psalmoi), 즉 「(현악기)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라고 명칭하게 된다. 재미있게도 이 희랍어 명칭은 시편이 반주와 함께 불려지던 노래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기록 연대와 편집
필자가 논문을 쓸 때, 학생들 사이에서 피해가야 할 길로 정평이 나있던 책이 바로 시편이었다. 워낙 오래된 구전의 기간을 가지고 있는 특수 모음집이다 보니, 그 제작 연대조차 가늠하기 어렵고 여러 가지 해결되지 않을 애매한 문제들을 다분히 가지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시편은 구전으로 내려오던 여러 노래들이 기원전 12세기경부터 문서화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3세기말에 그 부분적 모임들이 어느 정도 형성되고, 최종적으로는 마카베오시대(기원전 2세기)에 이르러 현재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즉 시편은 거의 천년에 이르는 제작 기간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만일 이러한 제작 기간을 인정한다면 시편의 역사는 곧 이스라엘의 역사요, 그 편집기간은 이스라엘 역사 전면에 걸친 장구한 작업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저자들
전통적으로 시편의 작가는 다윗으로 간주되어왔다. 150개의 시편 중에서 73편이 그의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시와 노래는 다윗 이전에도 존재했었다. 예를 들어 라멕의 복수의 노래(창세 4, 23~24), 우물의 노래(민수 21, 17~18), 모세의 찬가와 미리암의 노래(출애 15, 1~21), 드보라의 승리의 노래(판관 5, 2~31) 등은 다윗 시대 이전부터 이미 불려지던 노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다윗의 것으로 간주되는 시편으로는 3~9, 11~32, 34~41, 51~65, 68~70 등이 있다. 그 외의 저자들로는 코라의 후손들, 아삽, 솔로몬, 헤만 등이 존재하고 이 외의 작품들은 작자 미상의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들 저자가 그 작품의 저자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저자로 지목된 인물들이 제시하는 전통적 권위와 그 신학적 배경 위에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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