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끔씩 사순절 기간이 되면 사순절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처음 이 말을 듣는 신자들의 반응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사순절 하면 회개와 단식, 금육과 자색 등 전반적인 분위기가 뭔지는 모르지만 기쁨과는 거리가 있는 분위기요 교회의 전례도 엄숙함이 스며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사순절을 기쁘고 즐겁게 지내야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순절의 중심인 십자가의 죽음 때문입니다. 인간의 좁은 머리로 십자가의 의미를 전부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성서에 나오는 십자가의 의미는 인간 구원을 위한 죽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죄를 극복할 수 없기에 하느님은 예수님을 보내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구약의 어린양과 같이 우리를 위한 「희생양」이 예수님 죽음의 의미라고 복음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십자가는 인간 스스로 죄를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메시지요,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의 아들까지 희생할 만큼 너희를 사랑한다」는 하느님 사랑의 징표요, 호소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는 사순절은 결코 우리 죄를 아파함에 초점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을 의식하는 기간이어야 하고,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의식할 때 기쁨과 즐거움은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사순 제4주일인 동시에 기쁨 주일입니다. 복음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 이어 계속되는 재생에 관한 요한 복음사가의 명상록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먼저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3, 14)』고 말씀하심으로 십자가 사건의 예형인 「구리뱀 사건」을 통해 십자가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구리뱀 사건(민수 21, 4~9)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사막에서 생활할 때, 부족한 음식과 물 때문에 노예생활을 다시 그리워하며 불평할 때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이들의 배은망덕에 하느님은 불뱀을 보내 백성을 물어 죽이자 모세는 백성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때 하느님이 구원의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구리뱀입니다. 「구리로 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놓고, 그것을 바라본다면 뱀에 물린 사람이라도 죽지 않는다」하는 것이 구리뱀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구리뱀 사건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먼저 자신들의 배은망덕을 생각하게 합니다. 노예생활에서의 해방이란 커다란 은총의 선물을 순간적 고통 때문에 잊어버리고 하느님을 배반한 자신들의 잘못을 아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잘못에 대한 뉘우침이 의미 있는 것이긴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구리뱀은 이미 그 자체가 백성들의 배신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 그리고 생명이라는 하느님의 선물이 드러난 상징이기 때문에 여기서 중심이 되는 것은 죄와 배신을 넘어서는 하느님 사랑인 것이고, 거기에 비해 죄의 뉘우침은 단지 하느님의 용서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도, 그리고 오늘의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보는 마음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분명 예수님의 죽음은 죄에 대한 고발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러나 그 고발은 죄의 용서와 사랑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움추림의 경건이 아니라 충만한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 사랑에 보답할 수 없는 사랑에 취한 행복의 경건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를 넘어서는 하느님의 자비, 당신의 외아들까지 희생하는 가없는 사랑,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무한한 은총, 이것이 십자가가 가지는 의미요, 이것을 볼 수 있을 때 우리의 마음과 태도는 기쁨과 충만함으로 물들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요한복음서 저자가 구리뱀 사건과 십자가의 죽음을 연관시키면서 그 의미를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라」 정의하는 것도, 그리고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려는 것」이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도, 또 사순절의 한 중간 기쁨 주일에 교회가 이 구절을 오늘의 복음으로 선택한 이유도 이러한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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