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 사상 처음으로 신구약 성서에 대한 새 번역 작업을 완성, 한국 교회 성서 분야에 큰 획을 그었던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임승필 신부(제주교구)가 3월 24일 오전 7시50분경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숙환으로 선종 했다. 향년 52세.
고인의 빈소는 제주 중앙 주교좌 성당에 마련됐으며 장례미사는 3월 26일 오전 11시 봉헌됐다.
「하느님의 통역사」로 불릴 만큼 1989년 3월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임명을 받은 이후 14년여 동안 줄곧 성서 번역 작업에만 몰두해 왔던 임신부는 특히 1989년부터 20여명의 번역위원, 우리말 위원들과 함께 신구약 성서 완역 작업에 착수, 원문 독회는 물론 우리말 독회까지 참석하는 열성과 집념으로 신구약 성서를 모두 우리말로 번역해 내는 역사적인 일을 이뤘다.
교황청 성서대학(Biblicum) 첫 한국인 성서학 박사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한 임신부는 외부 강의를 마다하고 오로지 번역 작업에만 투신할 정도로 성서 번역을 순명으로 받아들였다는 평이다.
신구약 새 번역 작업에 있어서는 「우리말과 원문을 모두 살린 성서 출판을 목표」로 대부분의 시간을 「히브리어」 「그리스어」 참고 서적을 비롯 우리말 사전 속에 파묻혀 지냈고 완간 후에는 「모든 이가 공용할 수 있는 합본 성서 출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일념으로 수정 보완 작업 추진에 의욕을 보였다. 투병 중에도 차도가 있을 때면 1시간 정도는 사무실을 찾아 작업 상황을 살폈다는 후문.
갑작스럽게 대들보를 잃은 성서학계 관계자들은 『정말 외로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번역작업에 사제 생활 전부를 쏟았던 고인의 노력은 성서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면서 『인품 면에서도 하느님 말씀대로 사는 분이었고 자신보다는 다른 이들의 의견을 먼저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겸손한 분이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1950년 제주에서 출생한 임신부는 1975년 광주가톨릭대학교 학부를 졸업한 후 1979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룩 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했으며 같은해 사제로 서품됐다. 이어 로마로 유학한 임신부는 1987년 교황청 성서대학 성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88년부터 1년간 제주교구 중앙본당 보좌신부 역임후 1989년 3월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로 임명됐다.
한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는 장례기간 동안 회관 내 신관 지하강당에 분향소를 설치했으며, 장례미사 및 삼우미사를 봉헌했다.
임승필 요셉 신부님,
신부님께서 먼저 가시는군요. 먼저 가십시오. 곧 뒤따라 가겠습니다.
오십보 백보랍니다.
석달 전, 신부님은 소화가 안 된다면서 동네 병원에 가셨다가 그래도 효험이 없자 성모병원에 가셨고 내시경 진찰을 받으신 뒤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상태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입니다.
첫 번 항암치료를 받고 퇴원하신 날,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테니스 클럽에 회비를 내러 가셨습니다. 아마 지금쯤, 그러니까 봄이 오면 코트에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신 거지요. 엊그제 신부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이젠 이 세상 아닌 천상에서 이루어질 꿈이라 생각하며 마음 한편이 아려왔습니다.
임승필 요셉 신부님,
신부님과 함께한 해와 달과 날과 시간이 참 행복하였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번역하다 막히면 옆방의 신부님을 찾아갔고 이미 번역의 선배 아니 대가로서 척척 어려움을 풀어주셨습니다.
주말에도 꼭꼭 연구실에 내려와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셨기에 신구약성서를 새로 번역하는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참 장하십니다. 이제 한 단계 마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는 신부님을 하느님은 불러 가셨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구약성서 번역의 대미였던 요한 묵시록이 출간되었을 때 신부님을 알고 아끼고, 신부님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 모시고 조촐한 출판기념회라도 열 것을 그랬습니다. 참 아쉽습니다.
일과를 마치고 저녁시간에는 신부님과 함께 당구도 치고, 고스톱도 치고 그러면서 망중한을 즐겼는데 이젠 저 혼자로군요.
임승필 요셉 신부님,
지금 신부님이 일생 동안 꾸시던 꿈은 이루어졌지요? 신부님은 하느님의 말씀, 천상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 우리말로 옮기는 데 청춘을 다 바쳤습니다. 이제는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의 언어로 통하지요. 얼마나 멋집니까? 얼마나 좋을까요? 바로 그분을 바로 그 말로 알아듣는 것 말입니다.
이제 혼자 남은 저는 신부님을 한없이 부러워합니다. 신부님이 못하고 가신 일 조금도 걱정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더 좋게 이루어지도록 안배하실 것입니다. 이제는 그저 하느님의 안식을 한없이 누리십시오. 그저 사랑과 진리 자체이신 그분을 한없이 누리십시오.
참, 이번 부활성야의 「용약하라」는 누가 그토록 멋지게 부를 것인가요. 지난 해 신부님께서 불러 주신 「용약하라」는 제가 지금까지 들었던 가운데 최고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협의회 신부님들 등쌀에 금일봉을 신부님께 올려 드리지 않았습니까?
신부님, 사순절에는 천국 문이 활짝 열려 있다고 말하던 우리 신앙 선조들 믿음대로 아니 신부님의 수호 성인이신 성 요셉 성월에 천국 문을 두드리시는 신부님을 우리의 인자하신 요셉 성인이 두손 벌려 맞이하실 것입니다.
참, 며칠 전 영명축일에는 힘드신 가운데서도 우리의 축하를 고맙게 받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신부님의 천상 탄생일에 드리는 우리의 축하를 받으십시오.
이 세상의 파스카가 아닌 천상 파스카 축제는 지금 신부님의 것입니다.
알렐루야. 신부님을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초대하여 주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아멘.
정승현 신부(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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