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0. 죄를 인정한 자가 가질 수 있는 희망
갑자기 불안해지고 속이 울렁거릴 때, 불현듯 우울해지고 머리가 아플 정도로 화가날 때, 그 슬픔의 원인은 언제나 한 가지로 규정될 수 있다. 내가 은연중에 알고 있는 바로 「나 자신과의 불화」가 그것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타인 때문에 현재의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애써 외면해왔지만 자신마저 속일 수는 없던 자신의 이기심, 치졸함, 그리고 그런 것들이 주는 죄책감, 가책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때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스스로에게 자신의 죄를 솔직히 알려주고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문제가 크게 호전되지야 않겠지만, 적어도 답답함 속에 타인에 대한 원망만을 불안하게 고집하는 것보다는 훨씬 편한 마음이 될 수 있다. 죄는 그 죄를 인정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희망이 될 수 있으니까….
시편 130. 개관
지난 주 까지 우리는 찬양시의 한 예로 시편 8편을 살펴보았고, 이제 탄식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자 한다. 제한된 지면과 연재물이라는 주어진 조건 하에 적절한 시편을 선택한다는 것은 예상외로 어려운 일이었다. 고심 중에 선택하게된 본문은 시편 130편이다. 이 시편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죄를 인정한 자가 가지는 희망」에 대하여 잘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개인 탄원시」적 특성들을 드러내고 있지만, 철저히 희망과 구원에 조준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찬양시」의 해방적 측면과 연결되어 있다. 몇 주전 다룬바 있는 「탄원시와 찬양시의 신학적 연계점」이 시편 130편에서도 여실히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전통적으로 이 시편은 장례 혹은 보속행위와 연관된 전례 때 자주 쓰여왔는데 『De profundis』(깊은 곳에서)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온화하면서도 정직한 언어로 죄와 은총의 속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독자들은 좀 번거로우시겠지만 가능하다면 우선 해당 시편을 읽으신 후, 이어지는 「구조에 대한 고찰」을 따라와 주셨으면 한다.
시편 130. 구조
시편 130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전반부는 1절부터 4절에 해당된다. 이 부분이 함께 묶일 수 있는 이유는 『오, 야훼여』라는 호칭을 1절과 3절에서 반복하고 있고, 『당신』이라는 2인칭 존칭으로 야훼를 부름으로써, 이 부분이 일종의 「기도」 양식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절부터는 상황이 바뀌어진다. 야훼를 더 이상 『당신』이라 부르지 않고 『그분』이라는 3인칭 대명사로 지칭하고 있고, 시편을 진행하는 『나』라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5절부터 새로운 장면과 내용이 시작됨을 암시한다.
내용면에서도 「기도」로 전개되던 시편은 후반부서부터 이스라엘을 향한 「고백」으로 이어지는데, 이상의 입장을 종합한다면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겠다.
전반부 1~4절: 기도 -> 야훼께
후반부 5~8절: 고백 -> 이스라엘에게
이러한 체계적 구조는 시편 130편이 무성의하게 우연적으로 완성된 노래가 아니라, 저자 나름대로 치밀하게 준비한 문학적 산물임을 보여 준다. 다음 주부터는 중요한 구절들을 따라가면서 저자가 언급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살펴보는 자리를 갖기로 하겠다.
죽을 것 같이 아픈 사람이 어둔 밤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날이 밝으면 병원에 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죄의 그늘, 그 깊은 어둠 중에서도 바르게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시편 130편이 제시하는 것처럼, 나의 죄스러운 입장을 솔직히 인정할 때 바로 거기에서부터 하느님의 은총은 시작된다는, 분연한 희망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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