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산교구로의 이동 명령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착좌식은 1989년 2월 21일 유서 깊은 마산의 첫 본당인 완월동 성당 터에 세워진 성지여고 강당에서 가졌다. 그리고 지금은 은퇴하여 이 성지여고 구내에 있는 사제관에서 살고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서부 경남은 내가 1951년 월남한 뒤로 가장 오래 살아온 제2의 고향이기 때문에 제주나 전주에 부임할 때에 비기면 마음의 부담이 아주 적었다. 그리고 인자한 성품이신 전임 장병화 주교님을 모시는 것도 마음의 푸근함을 더해 주었다. 그러나 장주교님께서는 애석하게도 1년 뒤인 1990년 여름에 세상을 떠나셔서 아쉬움이 남았다.
마산교구에 취임하면서 나는 교회의 「사회 복음화」사명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였다. 우리 한국 사회가 해방 뒤부터 줄곧 혼란한 가운데 윤리 도덕이 바로 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교회가 사회교리에 맞는 정의롭고 평화스러운 사회 건설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목자의 한 손에는 성서, 또 한 손에는 신문이 들려져 있어야 한다는 어떤 설교가의 표현을 곧잘 인용하곤 하였다. 그래야만 사목헌장의 표현대로 「시대의 징표」를 읽고 그 「세대에 알맞는 방법」으로 사목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사목헌장 4). 사회 문제에 대한 이러한 나의 관심은 아마 잠시나마 로마에서 사회학 공부를 한 것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나는 사회 복음화는, 마치 물고기를 건강하게 키우려면 흐린 물을 깨끗하게 바꾸어 주어야 하는 것과 같이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는 퇴폐한 사회 분위기를 깨끗하고 정의롭게 바꿔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교회의 사회 복음화 사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나는 사회 복음화는 단계적으로 기초부터 다져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3년에 걸쳐 「가정 복음화」를 위한 교구 사목 계획을 세운바 있다. 그리고 복음화된 가정과 신자 공동체(소공동체)도 또한 단계적으로 사회의 도덕성 회복, 정의로운 사회 구현, 사랑의 사회 분위기 조성에 이바지하는 것을 사목의 목표로 제시하였었다. 물론 사회 복음화는 하루아침에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교회가 세상 끝날까지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중요한 사명이다. 오늘의 세계와 우리 사회의 세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절실해진다.
마산교구는 비록 작은 교구이지만 나의 전임 장주교님 때부터 해외 선교에 힘을 쏟아왔다. 나는 전임 주교님의 그 뜻을 기꺼이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키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마산교구가 남미 에콰도르에 선교사(Fidei Donum 선교사. 「다시 태어나도…」 11회 주 참조)를 파견하고 그 선교 활동을 뒷받침하려고 경제적 도움도 주고 있는 것은 하나의 자랑거리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에콰도르에 사제 2명과 사도직 협조자(여자) 2명을 파견하여 왔으나 지금은 중국 대륙과 북방 선교가 더 절박하고 우리에게 맞는 선교지라는 판단에서 방향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에콰도르 선교에서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이 있다. 그것은 에콰도르의 수도 기또(Quito) 변두리의 가난한 지역인 뚜르밤바(Turbamba)에 마산교구가 성당을 하나 지었고 그 첫 본당 신부로 마산교구 신부(이한기 요셉)가 사목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본당의 주보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모신 것이다. 미국과 여러 나라에 김대건 신부님을 주보로 모시는 성당이 많이 있긴 하지만, 모두가 한인 신자를 위한 성당이고 원주민을 위한 성당으로서는 기또가 처음이다. 나는 몇 차례 에콰도르를 방문하여 뚜르밤바 본당에 갈 때마다 신자들이 김대건 신부님을 공경하고 기도를 바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뿌듯함을 느끼곤 하였다.
마산교구가 에콰도르에 선교사를 파견하게 된 데는 마산교구가 오스트리아(Austria)의 그라츠(Graz) 교구와의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라츠 교구에서 오래 전부터 에콰도르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기 때문에 이왕이면 마산교구도 다른 곳보다는 함께 선교사를 파견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도 선교지에서의 자매결연 관계가 잘 유지되고 있다. 현재 에콰도르에는 신부 한 분(양태현 그레고리오)이 원주민 본당을 맡아 사목하고 있고, 협조자 한 분(박정희 안나)이 가난한 지역에 초등학교를 지어 운영하고 있으며 첫 졸업생을 배출할 단계에 와 있다.
지금 마산교구는 중국 선교를 위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중국에 살고 있는 이 고장 출신의 한 교포 신자를 통하여 그 곳(심양교구) 선교를 위하여 성당이 필요한 사실을 확인하고 성당 건축을 돕고 있다. 마침 이번 부활 둘째 주일 그 성당 착공식에 교구의 해외 선교 후원회원들이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사스의 만연으로 말미암아 참석을 못 하게 되어 매우 아쉬웠다. 앞으로 여건이 허락되면 남녀 선교사도 파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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