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술진흥재단이 3년간 11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한국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 교회」 연구 프로젝트는 한국 사회와 가톨릭 교회의 상호 관계를 연구하는 뜻깊은 기회이다. 「근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연구책임자=박일영 교수)은 지난 5월 3일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에서 제1차년도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심포지엄을 가졌다. 14편의 연구 논문을 총론, 정치.사회, 사상.문화 분야 등 세 분야로 나눠 종합 정리한다.
「한국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교회」를 사상과 문화의 측면에서 연구한 논문은 총 8편이다. 각 연구 논문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개항기 선교정책 조명
장동하 신부의 연구 주제는 「개항기 교회재건 운동과 선교정책」이다. 이 논문에서 연구자는 병인박해 후 전개된 교회 재건을 시작으로 개항기 전반에 대한 선교정책에 주목하면서 교회가 어떻게 한국 사회에 정착하고자 하였는지 살펴본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첫째, 개항기 교회의 가장 초기에 해당하는 때에 신자와 선교사들은 병인박해로 무너진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에 주목한다. 둘째, 제7대 조선교구장으로 착좌한 블랑 주교가 개최한 제3차 시노드에 대한 간략한 분석을 통해 지도자들이 결정한 교회 내실화의 내용을 점검한다. 셋째, 개항기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였고 투표로 선출된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주교의 선교정책을 두 시기(1890~1895, 1896~1906)로 나누어 살펴본다. 이와 같이 본 논문은 개항기에 교회가 추진한 여러 정책의 줄기를 더듬어 가면서 선교정책의 내용을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베네딕도회 진출 경위 연구
장정란 박사의 연구주제는 「외국 선교회의 한국선교」다.「 외국 선교회의 한국선교정책」은 독일 베네딕도회의 한국 진출경위와 1909년부터 1927년까지의 초기 서울시기의 주 선교활동인 교육 사업에 관한 연구이다. 베네딕도회는 파리외방전교회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에 진출한(1909.1) 수도회이며 동시에 한국최초의 수사신부(修士神父)들로서 문화적, 간접적 선교활동을 표방하며 한국 교회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인 사범학교와 실업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들은 수련 모토인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를 실천하는 한편 자신이 보유한 재능을 교육이라는 문화적 활동을 통해 전수하며 포교하였다. 베네딕도회는 1910년 숭공학교(崇工學校)를 세워 실업교육을 시작하고, 1911년에는 교사를 배출할 2년제 사범학교로 숭신학교(崇信學校)를 설립하였다. 특히 독일식 도제제도(徒弟制度)를 적용한 실습 위주의 숭공학교는 많은 뜻 있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우수한 교육기관으로 인정받았으며 한국 실업교육사에서도 주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일제의 억압적 식민지 교육정책,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독일의 패전으로 인한 베네딕도회의 재정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숭신학교는 1913년, 숭공학교는 1921년에 각각 폐교되고 말았다.
사제양성 교육 연구
노용필 박사의 연구주제는 「예수성심신학교의 사제 양성 교육」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신학교이자 근대학교는 1855년에 메스트로 신부가 창설한 배론(舟論) 성요셉신학교로, 이 학교에서 행해진 교육의 내용은 대체로 언어.교양.종교영역이었고, 이러한 내용을 서양의 근대 학문을 체득한 서양인 신부가 직접 가르쳤으므로 최초의 근대 학교로 평가된다. 이후 소신학교의 개교를 준비하여 1885년 10월 28일에 부흥골 예수성심신학교가 개교되고, 1887년 3월에는 용산 함벽정(函碧亭)으로 옮겨지는데, 이것이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였다. 이 학교의 초기는 1887년부터 1900년까지로, 페낭 신학교 출신자의 사제 서품 시기였으며, 중기로 구분한 1928년까지는 신학생의 증가와 권위주의적 교육 시기였으며, 후기로 구분되는 1942년 폐교 때까지는 대.소신학교의 분리와 교육의 내실화 시기로 정리되었다. 이 대신학교가 1942년 2월 총독부로부터 폐교 통지를 받고 결국 폐교를 하고 말았는데,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노기남 신부가 주교품에 오르게 결정되자, 이에 따른 일제의 교회에 대한 간섭 정책에서 말미암은 것이었다.
우리말 성서 역사 정리
이성우 박사는 「한국 천주교회의 우리말 성서번역사와 우리말 성서번역의 의미」에 대해서 연구한다. 이 논고는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이루어진 우리말 성서 번역의 역사를 정리하고 그 의의를 고찰한다. 연구자는 우리말 성서 번역사를 네 시기로 구분한다. 제1기는 「성경직 해광익」(1790~1800년)부터 한기근 신부 번역의 「사사셩경」이 출판되기 직전까지(1909년), 제2기는 「 사사셩경」(1910년)부터 「복음성서」(1948년)까지, 제3기는 선종완 신부의 구약성서 번역(1958~1963)부터 「공동 번역 성서」까지, 제4기는 「200주년 신약성서」부터 「신약성서 새 번역」까지로 분류한다. 이 분류는 한국인의 한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성서 번역의 성격 변화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우리말 성서 번역사와 그 의미에 대한 선행연구는 대부분 우리말 성서 번역의 신학적.국어학적 고찰에 그치고 있고, 그 중 신학적 연구는 하느님 말씀으로서의 성서 전파와 번역된 성서의 분량 및 전문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달리 이 논고는 한국인의 자기 언어인 한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정도에 따라 성서 번역사를 정리하고, 자기 언어에 대한 자각으로 표현되는 주체적 자의식과 성서 번역의 연관성에 대하여 고찰한다는 점에 차별성을 둔다.
대중적 신심의 배경 설명
최경선 박사의 연구주제는 「한국 가톨릭 신심유형과 그 역사.문화적 배경」이다. 연구자는 「신심」을 신자들의 「모든 신앙행위」로 정의하고, 대중성이 강한 신심들이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그 배경을 살펴본다. 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에 드러나는 대표적인 신심 유형들은 성체.순교자.성모.대사와 은사회 등이다. 이 때의 신심유형들은 교회의 지도층이 주관하는 행사 위주(성체.순교자.성당 봉헌 등의 신심), 개인 구령 위주(대사와 은사회, 성물 등의 신심)의 특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신심유형들의 특성은 국가나 민족의 문제에서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연구자는 그 원인을 역사적인 관점과 문화적인 관점에서 찾고자 시도한다. 이 논문은 민중신앙의 형태와 가톨릭 신심 유형이 공통적으로 지닌 유사점을 찾고, 한국 문화와 가톨릭 신심유형과의 접합을 시도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토착종교와 가톨릭만남 고찰
박일영 교수는 「구한말 토착종교와 가톨릭의 만남」에 대하여 김원영 신부의 「수신영약」(修身靈藥, 1900)을 중심으로 연구한다. 연구자는 제주도 「신축교안」(1901)에 종교사상적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되는 「수신영약」을 중심으로 한국의 토착종교와 가톨릭의 만남이 한국 근.현대 100년 속에서 지니는 종교문화적인 의미를 천착한다. 제주도에 부임한 김원영(아우구스티노, 1869~1936) 신부는 제주도 현지의 토착종교 및 민간신앙이 선교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그가 저술한 「수신영약」은 제주도 토착종교 및 민간신앙의 현상들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룬 후, 이에 대하여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가톨릭의 교리가 올바름을 내세우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한말 가톨릭과 토착종교의 만남과 마주침을 과제로 하는 본고의 연구 방법은 먼저, 이상에 소개한 김원영 신부의 「수신영약」을 저본으로 삼는다. 그 안에 들어있는 핵심적 요소를 가톨릭의 사상과 문화적 요소와 비교하는 작업인 종교현상학적인 연구와 해석을 시도한다. 그리하여 대전환기였던 구한말/개항기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종교간의 만남과 갈등이 보여주었던 실상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다시 찾아본다.
천주가사집 의의 다뤄
김영수 박사의 연구주제는 「필사본 천주가사집 출현의 배경과 의의」이다. 이 논문은 천주가사 출현의 연장선상으로 천주가사집 출현의 배경과 의의를 다루고 있다. 현존하는 52종의 필사본 천주가사집 중 필사시기를 알 수 있는 것이 32종이며, 이 중 23종이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에 제작되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 배경과 의의를 각각 문화사적, 교회사적 관점에서 추적한다. 박해를 견디는 자기 강화의 방법이자 신자들 사이의 결집력을 높이던 천주가사집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점차 소멸된다. 이는 서구지향의 급격한 사회변화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자국 문화에 대한 우월감으로 한국의 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파리외방전교회를 비롯한 교회지도층의 무관심에도 기인한다. 천주가사는 천주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동시에 천주교 교리를 담고 있다는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한국의 문화 속에서 나타난 한국어로 된 교리서로 정체성의 위기의 시대에 이를 해결해 줄 토착화 신학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죠션어셩가집 분석
김수정 박사의 연구주제는 「죠션어셩가집에 대한 분석.연구」이다. 이 논문은 1924년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에 의해 편집.발행된 「죠션어셩가집」에 수록된 성가의 가사와 선율을 분석하고 문화사적, 사회사적 의미를 조망한다. 「죠션어셩가집」은 프랑스 선교사들과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합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죠션어셩가집」 안에서, 천주가사의 고착성은 서양성가와 동행하고 있는 우리의 노랫말들 속에서, 파괴의 일면과 함께, 형식적일지라도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죠션어셩가집」에 수록된 성가들의 가사의 리듬적 「규칙성」과 선율의 「반복구조」는 한국의 가사문학과 서양의 성가선율이라는 이질적인 두 문화의 「충돌」이 처음에는 조금은 거칠어 보이지만, 「만남」과 「대화」로 이어질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음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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