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를 준비하다 임승필 신부님의 부고 소식(본지 3월 30일자)을 접하게되었다. 시편을 연재하기 시작하고, 글을 매주 준비하면서 늘 들었던 솔직한 생각은 한국 최고의 시편 연구가인 신부님께서 제발 이 글만은 읽지 말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대가가 읽으시기에 너무도 부족한 글이 왠지 두렵고 송구스러웠던 것이다. 이제 타계하셨지만 미진한 글을 하늘에서라도 지도해 주시고 도와 주시기를 청하는 마음으로 글을 이어가고자 한다.
여러 양식들의 생성
시편집 안에는 여러 내용과 유형의 시편들이 존재하는데(찬양, 박해 당하는 개인 혹은 민족의 탄원, 집단적 감사와 축제적 반향, 관료적인 기록들 등), 이 노래-기도들은 그것이 형성될 때의 사회상, 저자의 개인적 역사, 그 시편을 노래하던 대중들의 직접적 관심 등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박해 중에는 억압에 대한 비탄의 시편들이 만들어지고, 해방과 번영의 시대에서는 환희와 기쁨의 시편이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그러므로 각 시편의 다양한 내용과 양식은 그 시대, 그리고 관련된 공동체(삶의 자리)의 관심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고, 이렇게 생성된 여러 시편들은 각각의 유형과 내용에 따라 구별된다. 예를 들어 찬양의 내용을 주로 하고 있는 시편들은 「찬양시」라고 불려지고, 반면 탄식과 한 맺힘에 대한 절규를 주요한 내용으로 하고 있는 시들은 「탄식시」라고 규명되며 구분되고 있는 것이다.
시편과 전례, 그리고 여러 형식들
현재의 시편집은 전례 때 사용하기 위해 편집된 일종의 「노래집」 혹은 「기도집」이었을 수 있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조금 과장일 수 있겠지만,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는 가톨릭 성가집이나 청소년 성가집 같은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 간주되고 있는 셈인데, 가톨릭 성가집을 보면 성체 때 부르는 노래 혹은 봉헌, 입당 때 부르는 노래들이 서로 따로 구분되어 있고, 각 전례 주기에 맞추어 부르는 성가들 역시 구분되어 있다. 즉, 대림 때 부르는 성가가 다르고 부활 때 부르는 성가가 서로 다른 것이다.
이와 동일하게 시편집 안에는 각각의 전례시기에 적절하게 선정하여 쓸 수 있는 여러 유형과 내용의 노래들로 구성되어있다. 즉, 모두에게 축하와 기쁨의 의미가 있는 예식을 거행할 때는 「찬양시편」들 중에서 적절한 것을 선택하여 사용하고, 보속과 절제의 상황 속에 개인 혹은 민족의 탄원이 주요한 내용이 되는 전례 중에는 「탄원시편」 중 적합한 것들을 선정하여 불렀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시편 중에 전례 의식과 연결된 듯한 인상을 주는 시들이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에 등장한 가설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시편 92편(여기서는 임승필 신부님이 번역하신 주교회의 새 번역 성서의 시편 번호를 따른다. 시편 번호에 대한 것은 지난 주 지면을 참조)은 「안식일을 위한 노래」로 되어있고 100편은 「감사 예식을 위한 노래」라고 제시되어 있으며, 38편, 70편에 등장하는 「기념으로」라는 표현 역시 어떤 전례적 기능과 연결되어 있다고 간주되고 있다. 시편 120~134편은 「오름/계단의 노래」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이 역시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을 올라가면서 했던, 전례 의식 노래들이었을 것이라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에 대한 반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전례의 중요성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많은 시편에서 성전, 의식, 전례들에 대한 직접적, 간접적인 언급이 없고, 또 몇몇 시편에서는 종교의식에 대한 비판도 들어있기 때문이다(시편 40, 7 50, 7~15 69, 31~33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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