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부활대축일을 한 주 앞둔 지난 13일 서울 명동성당 교육관 3층 교무실. 10명의 주일학교 교사들이 조용히 기도를 바치고 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Ⅰ 데살로니카 5, 16∼18). 교무실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성서 말씀이 그들의 삶을 대신 말해주는 듯 하다.
아침 기도를 마친 교사들이 서둘러 문을 나선다. 매주일 10시면 어김없이 성당을 찾는 아이들을 마중 나가기 위해서다.
부모의 손을 잡은 아이들이 하나둘씩 성당을 들어서자 득달같이 달려나가는 교사들. 꼭 껴안는 이가 있는가 하면, 무언가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따뜻한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세상과 문을 닫은 아이들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한 노력들이다.
서울대교구 명동본당 장애아부 주일학교 솔봉이 학교(교감=심승원, 지도=이형기 신부). 이곳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일 때 가장 행복하다」는 장애아부 주일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몸은 불편하지만 누구보다도 맑은 영혼을 지닌 열 다섯 명의 「작은 천사」들이 함께 하는 모임이다.
「솔봉이」는 어리숙하고 촌스러워 보이지만 착하고 순수한 사람을 가리키는 순우리말.
스무 살 대학 신입생부터 서른 살 직장인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10명의 교사들은 매주일 정신지체, 다운증후군, 자폐증 등 발달장애를 겪는 아이들과 함께 땀을 흘린다.
미사, 교리, 간식시간 할 것 없이 심한 감정 기복을 보이는 아이들. 때로는 괴성을 지르거나, 갑자기 뛰쳐나가고, 주먹을 휘두르며 무작정 떼쓰기도 한다.
그러나 교사들은 수십 번의 진땀을 빼며 온몸으로 이들을 달랜다. 매일 약을 챙겨 먹어야 하는 아이, 수시로 급작스런 발작을 일으키는 아이 등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아이들을 맡다보니 교사라기보다는 아이들의 부모 역할에 가깝다.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기본은 「믿음」과 「기다림」이에요. 아침부터 미사와 교리시간 내내 아이들과 부대끼고 싸우면 몸은 녹초가 되죠. 그래도 아이들이 맑은 웃음 지으며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의 피로가 싹 풀립니다』
솔봉이의 창단 멤버이자 교사들의 맏언니 역할을 맡고 있는 선윤정(소화 데레사.32)씨는 『갇혀진 세상 속에 살던 아이들을 하느님의 품안으로 초대한다는 보람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땐 몸도 못 가누던 아이들이 이젠 스스로 성호를 그어요. 입 모양을 보며 열심히 성가를 따라 부르기도 해요. 아주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힘과 용기를 얻게 되요』
교사들은 1대 1로 아이들을 맡는다. 부모의 손에서 아이들을 넘겨받은 순간부터 교사와 아이는 한 몸이 된다. 함께 성가를 부르고, 함께 성체를 모신 후 손을 마주잡고 기도를 한다.
교리 시간의 가위질, 풀칠, 색칠도 네 손이 동시에 만들어낸다. 어눌한 발음으로 주고받는 대화는 단 몇 마디 뿐. 그 밖의 모든 것은 마주잡은 손과 눈빛으로 서로에게 이야기한다.
처음엔 움직임조차 거부하던 아이들도 교사들의 반복된 정성 속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말 그대로 「개인 과외」면서 「맞춤 교육」인 셈이다. 결국 더 많은 교사들이 필요한 실정.
장애아반이라고 해서 매주 실내 교리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일반 주일학교와 마찬가지로 소풍도 가고, 성지순례도 한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는 1박 2일로 캠프와 피정도 다녀온다.
이밖에 아이들의 사회 적응력을 높여주기 위해 수시로 사람 많은 백화점도 찾고, 지하철도 함께 탄다. 이러한 크고 작은 다양한 행사들이 아이들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뭐든 어려운 점이 있듯, 이곳에도 기쁨과 보람만 자리하는 것은 아니다. 솔봉이 주일학교의 경우 지난 96년 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 산하에서 첫걸음을 내디뎠으니 올해로 만 7년째. 2000년부터는 본당 장애아부 주일학교 간판을 내걸고 활동했으나, 아직까지도 부족한 점이 많다.
『특수 장애아들을 위한 전문 교재도 없고, 1대 1 수업이 이뤄지다 보니 교사 수도 턱없이 모자라요. 조직과 체계를 갖춰 서울대교구 내에서 만이라도 장애아부 주일학교의 연계적인 활동을 해나가고 싶은데, 본당마다 사정이 다르고 아이들의 장애 정도도 천차만별이니 쉽지가 않아요』
교리가 진행되는 동안 잠시 만난 교감 심승원(클라우디아.30)씨의 말이다.
200여개가 훨씬 넘는 서울대교구 내 본당 중 명동 솔봉이 학교와 같이 주일학교에 장애아반이 있는 본당은 열 곳이 채 되지 않는 것이 우리 교회의 현주소.
이형기 지도신부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 특히 장애아동의 신앙 생활을 위한 교회의 관심과 사목적 배려는 미진한 실정』이라면서 『자기 한 몸 챙기느라 바쁜 요즘 세상인데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교사들을 보면 거듭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약 2시간여에 걸쳐 미사와 교리를 끝낸 아이들. 성모동산 앞에서 교사들과 다음 시간을 약속하는 아이들의 얼굴엔 작은 미소가 번졌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지만 선생님들이 있기에 결코 외롭지 않은 아이들. 매주 오던 아이가 한 주라도 보이지 않는 날엔 왜 오지 않았는지 궁금하고 걱정이 된다는 교사들. 아이 손을 꼭 잡고 미사를 드리는 선생님들을 볼 때면 마음이 뭉클해온다는 부모들.
『하느님, 아이의 손을 잡은 저는 더욱 작아지게 하시고, 제 손을 잡은 아이는 더욱 따뜻하게 하소서』
2003년 봄. 이들은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서로가 서로를 껴안고 보듬은 채 「세상」 속으로 힘차게 걸어나간다.
■ 국내 장애아부 주일학교 현황
「장애를 가진 아동들도 과연 제대로 신앙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아직도 적지 않은 신자들이 장애아동들을 동정의 대상으로만 생각할 뿐 비장애아와 똑같이 교회 안에서 신앙교육을 받도록 해주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애아부 주일학교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비록 아이들이 더디지만 하나씩 배우며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서 교회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대교구의 경우 장애아부 주일학교는 지난 96년 서울 명일동본당에서 개설된 것을 시작으로 현재는 가락동, 명동, 일산 대화동, 신당동, 구로동, 노원지구연합회 등에서 운영하고 있다. 지방교구로는 청주교구의 내덕2동, 모충동, 신봉동본당에 장애아 교리반이 있으며, 수원교구에서도 금곡동본당 등 10여개 본당이 장애아부 주일학교를 갖고 있다.
서울대교구 내 장애아부 주일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본당 대표가 모여 공식적으로 교회 안에 교사연합회를 발족한 것은 2001년 봄. 지난해부터는 서울대교구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연합회(지도=김영욱 신부) 안으로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초등부주일학교 교사학교」 초급 과정을 마치고 「장애아부 교사학교」를 마치면 장애아부 교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문의=(02)763-7966 서울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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