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기쁨과 축복이 가톨릭 신문 독자들과 독자들의 가정에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부활」. 이 사건은 인간의 근본 문제에 대한 가장 분명한 해답인 동시에 그리스도교 설립에 가장 근본적인 의미를 부여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부활 신앙에서 미묘한 사실은 이 사건은 객관화할 수 있는 어떤 이야기가 아니라 증언하는 사람들의 신앙 진술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부활이란 어떤 직접적인 증거에 의해 확인 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다만 간접적인 증거, 빈무덤이나 혹은 예수님의 죽음 전후로 우매하고 겁 많던 제자들이 완전히 변하여 목숨 바친 복음 선포자로 변한 점 등 다만 간접적인 증거로 밖에는 증언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에 대한 믿음은 누구에게나 명명백백한 객관적 사실로 다가오는 진리가 아니라 선택과 결단에 의해 다른 의미로도 다가올 수 있는 신앙적 진리 문제이기에 어떤 이들에게는 신앙의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불신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신앙에서는 어떤 객관적 상황이나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과 해석 그리고 선택이 더 우선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은 교회가 부활의 간접 근거로 자주 이야기하는 빈무덤 사화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안식일 다음날, 즉 30년 4월 9일 일요일 새벽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무덤에 찾아갔다가 무덤이 열려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 베드로 사도와 애제자에게 알립니다. 이에 두 제자는 경쟁하듯 달려와 빈 무덤과 무덤 안에 놓여 있는 수의와 수건을 확인하지만 예수님 사랑을 받던 제자만이 예수 부활을 알아차리고 부활을 믿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사화는 먼저 빈무덤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간접적으로 증언함과 동시에 당시 빈무덤에 대해 유다인들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견해에 대한 반박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당시 유다인들뿐만 아니라 역사가들도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다인들은 부활을 시신이 소생하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무덤에 시신이 있었다면 예루살렘에서 예수 부활을 도저히 주장 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다인들도 이 사실을 인정했습니다만 이들은 무덤이 비어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부활을 주장하려고 예수님의 시신을 이장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것에 대한 반박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무덤에 그 분의 수의가 흩어져 있고 예수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이 한 곳에 잘 개켜져 있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도적을 만났다면 수의도 수건도 다 가져가야 마땅합니다. 남아 있는 수건과 수의가 유다인들의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요한 11장 14절에 소생한 라자로의 얼굴이 수건으로 감겨져 있었다는 묘사와 비교해볼 때 잘 개켜져 있는 수건은 예수님이 단순히 소생한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생명으로의 부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가 오늘 복음을 보면서 묵상해 보고 싶은 점은 빈무덤을 대하는 두 제자의 태도입니다. 여기서 요한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애제자는 사도 요한을 뜻하거나 때로는 그리스도 교회를 상징하는 표현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든 베드로 사도는 부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빈무덤과 수건 수의를 확인하지만 믿음으로 연결되지 않은 반면 애제자는 같은 사실을 보고 믿습니다.
바로 이 사실은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증거가 우리에게 주는 「결과나 선물」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즉, 믿음에서는 주어지는 상황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진리는 증거나 상황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마음의 결단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심은 마치 확실한 증거와 외적 상황이 우리의 믿음을 가져오는 양 생각하면서 외적인 증거에 눈을 돌리려 합니다. 바로 이러한 우리에게 두 제자의 태도는 똑같은 증거라도 같은 믿음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눈이 관심을 가져야 할 바는 외적 증거가 아니라 나의 내면이라는 사실을 애제자의 모습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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