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우리는 새 생명의 시작을 봄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요즘 같이 새싹들과 꽃 망울들이 만발하는 현란하고 화려한 봄을 위한 준비는 사실 죽은 것 같이 지내던 시절, 그 엄동 설한의 혹독한 냉엄함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꼭꼭 숨겨진 채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해의 생명, 삶이 시작되는 곳은 꽃피는 춘삼월의 따사로운 봄볕에서가 아니라 한 겨울, 죽음과 적막, 그 열악함 속에서라는 것을 이 봄, 전쟁과 폭력에 지쳐있는 우리, 다시 한번 기억해야할 것 같다. 영광과 고통의 뗄래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말이다.
내용상 구분
지난주에 언급한 바와 같이 시편 150편은 서로 구분되는 형식과 내용으로 되어있다. 시편의 구분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각기 다른데, 히브리시 연구의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헤르만 궁켈(H. Gunkel)은 히브리 시문학을 총 다섯 가지 형식으로 구분한다. 찬양시, 탄식시, 감사시, 군왕시, 지혜시가 그것인데, 이 분류는 후학들에 의해 가장 클래식한 구분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궁켈의 입장 역시 비판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었는데, 그가 제시한 범주들의 구분이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사시와 찬양시 같은, 비슷한 내용과 형식의 시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었다. 이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고, 아마도 가장 안전하고 분명한 구분은 시편을 너무 세분화시키지 말고 크게 두 개의 카테고리, 즉 1) 「찬양 시편」과 2) 「탄식 시편」으로 정리하는 것일 것이다.
1) 찬양 시편은 「테힐라」라고 하며, 창조주에 대한 찬양, 하느님의 왕국에 대한 찬양, 시온에 대한 찬양 등이 포함되고,
2) 탄원 시편은 「테필라」라고 하며, 개인 탄식시편, 공동체 탄식 시편 등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내용, 즉 「찬양」과 「찬미」(봄의 화려함)는 「탄식」과 「절망」의 그늘(겨울의 적막)에서 본질적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 상반되는 두 가지 내용 역시 결국 하나의 진실을 표현하고 있고, 이 진리 안에서 상호 통합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부르짖음(탄식)과 신뢰(구원)의 역동성
이렇게 「탄식」과 「찬양」이라는 상반된 개념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하나의 진리를 추구하는 신학적 역동성을 가진다. 즉, 탄식과 절규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촉발시키고 전개시키는 궁극적 모티브가 된다는 점에서, 「탄식」은 곧바로 「찬양」으로 직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구약 신학자들은 정직한 탄식이야말로 구원과 해방이 시작되는 신학적 언어요 본연의 소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역동적 관계는 「탄식」(부르짖음)이 철저한 「신뢰」를 근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힘이기도 하다.
말 못하는 어린 아기지만 아기가 우는 것은 엄마나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 사회적인 논의 역시 그렇다. 무언가 목소리를 높일 때는 복잡한 현안들을 상대가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무의식적 믿음과 계산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타결의 가능성이 없다면, 결과 없는 무모한 투쟁을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시편 탄식시에서 보여지는 저자들의 탄식과 부르짖음은 하느님께만 구원과 해방이 있음을 강하게 신뢰하는 이스라엘의 야훼신앙을 전제로 한다. 결국 시편 탄식시에 드러나는 절규와 호소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고백과 이를 통한 구원의 응답이라는 성서 신학적 도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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