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해발 1200미터. 고원지대여서일까, 가슴 깊숙이 스며드는 공기가 꼬박 만 하룻동안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탄 끝에 도착한 이들의 피로를 단숨에 씻어내리는 느낌이다. 전 국토의 40%가 초원지대인데다 산림이 39%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 잠비아. 이름마저 생소했던 땅 잠비아는 그렇게 원시의 수줍음으로 첫 인사를 했다.
한반도의 3.4배 크기에 세계 3대 폭포 가운데 하나라는 빅토리아폭포가 있는 나라, 아프리카에서도 열대동물의 야성이 가장 잘 보존돼 있다는 4월의 잠비아는 우기 끝이라 아침 저녁으로는 한국의 초가을 날씨를 연상케 했다.
잠비아 사람들에게 대자연은 그야말로 절로 하느님을 느끼고 배우며 깨달아 가는 천혜의 도량일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문명과 떨어져 세상에 무심한 것 같은 사람들의 삶은 가늠하기 쉽지 않은 무게를 던져주는 듯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지대는 하늘과 맞닿아 마치 배를 타고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일행들 사이에서 시작된 이런 흥얼거림은 이내 합창이 됐다.
『오! 아름다워라, 찬란한 세상. 주님이 지었네. 오! 아름다워라, 찬란한 세상. 주님과 함께 살아가리라…』
그러나 대자연과 함께 한폭의 그림을 이루던 사람들의 삶에 한발 다가서자 그 비참함은 오히려 더 큰 아픔으로 전해져오기 시작했다.
▲ 프란치스꼬 전교 봉사수녀회 수녀가 주민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
만연한 병, 대책없는 삶
지난 96년 잠비아에 진출한 프란치스꼬 전교봉사 수녀회의 선교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돌라(Ndola)교구의 무풀리라(Mufulira)까지는 수도 루사카에서도 다시 버스로 예닐곱 시간을 넘게 달려야 했다. 잠비아에서 손에 꼽히는 대도시임에도 무풀리라로 가는 패이고 울퉁불퉁한 길은 잠비아 사람들의 녹록치 않은 일상을 상상케 하기 충분했다.
수녀회가 무풀리라의 빈민촌인 컴파운드에서 운영하는 보건소에서 목격한 장면은 충격 이상의 인간적 슬픔이었다. 나무에 오르다 떨어졌다고 아침 일찍 보건소를 찾아온 한 남자는 배에 분홍빛 비닐봉지를 달고 있었다. 무풀리라에서 제일 크다는 병원을 찾았지만 수술할 도구가 없어 나무에 찢겨 배로 흘러나온 장을 비닐로 싼 채 벌써 며칠째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이즈로 살이 썩어 들어가는 환자에, 복수가 차 배가 터질 듯한 남자 등 환자들의 행렬은 오전 9시 보건소가 문을 열 때부터 오후 2시 문을 닫을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뼈가 부러지거나 피부병을 앓는 이들은 환자축에도 끼지 못하는 듯했다.
가와마마을로 불리는 컴파운드에 사는 2만명에 이르는 주민들 가운데 크고 작은 병 한 둘을 지니지 않은 이는 없을 정도다. 수도는 고사하고 전기도 없는 일상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이곳 주민 90% 이상이 에이즈 환자라 말라리아나 결핵, 피부병, 폐렴 등은 덤으로 가진 병이 돼버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보건소 앞에는 매일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삶의 희망의 끈을 잡으려는 눈물겨운 모습을 연출해내고 있다. 한국에서 약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어떻게 들었는지 이런 날이면 더 많은 이들이 모여 아우성이다. 약이라고 해야 정부에서 주는 아스피린 정도 외에는 본 적이 없는 주민들에게 항생제와 주사제 등은 생명을 살리는 기적의 선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약 몇 알에 모든 희망을 거는 듯한 눈빛은 좀처럼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지난 99년 잠비아로 파견돼 보건소를 담당하고 있는 주경순(바울라) 수녀는 안타까운 마음에 눈망울이 흐려지는 듯했다.
오후에는 가정간호
보건소 진료를 마치고 가정간호를 위해 마을의 신자봉사자와 나선 길은 더욱 처참했다. 흙으로 얼기설기 지어진 집으로 들어서자 참기 힘든 죽음의 냄새부터 전해져왔다. 빛이라곤 들지 않는 집 한구석에는 보건소조차 찾을 힘이 없을 정도로 기진한 환자가 어둠과 하나가 되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주수녀가 손을 잡자 소리도 지를 힘이 없는 환자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쇠약해져 있었던 것이다.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도록 약을 두고 가지만 다음 날이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숱하게 굶어죽어 가는 고아들, 대대로 물려받은 에이즈로 일가족이 서로 죽어가는 모습을 쳐다봐야만 하는 참상, 컴파운드는 그렇게 위태로운 일상을 이어오고 있었다.
호스피스 쉼터 마련
『시스터, 아임 헝그리. 기브 미 머니』
환자의 집을 나서자 어디서 몰려왔는지 수백명의 아이들이 일행을 둘러싸고 마를 대로 말라 보기도 안타까운 손을 내민다. 운 좋게 1달러라도 얻으면 한달치 양식값이 되기에 컴파운드를 떠나기 전까지 아이들의 행렬은 일행을 따라다녔다.
이런 가운데 올 7월 컴파운드 한가운데 들어설 호스피스 쉼터와 교육센터 역할을 할 「투와타시아(감사라는 뜻의 원주민 말) 센터」는 온 마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신저가 되고 있었다.
『센터가 문을 열면 어둠 속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아야 하는 이들이 더 이상 없을 거라는 데 위안을 삼습니다』
수녀회는 컴파운드 사람들의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 인근에 240헥타르 규모의 농장도 일구고 있다. 농장에서는 농업기술학교 공사가 한창이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밑거름이 되고 싶습니다. 저희를 통해 이 곳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면, 그래서 함께 하느님나라를 맛볼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희망을 캐러 오늘도 현장으로 달려가는 수녀들, 이들로 인해 희망이 잠들어 있던 땅 잠비아는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듯했다.
※도움주실 분=(02)773-0797∼8, 454-001401-02-201 우리은행
예금주 : 아프리카 잠비아 선교후원회(나 레오노라 수녀)
■ 무풀리라 고아원 원장 사라 수녀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미래가 보여요”
『희망이란 말조차 잊고 살던 이들이 새로운 희망에 눈떠 가는 모습이 가슴 벅차게 다가옵니다』
잠비아인으로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라 신고고(23) 수녀는 잠비아의 희망찬 미래를 떠올렸는지 살포시 미소를 띄운다.
지난 99년부터 3년간 한국에서 성소의 길을 닦은 후 지난해 3월부터 무풀리라의 빈민촌 어린이들을 위한 고아원인 「로빈스 네스트」 원장을 맡아오고 있는 사라 수녀에게 고아원 아이들은 잠비아를 위한 새로운 희망의 씨앗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고 싶습니다』
12살 때부터 수도자의 길을 마음에 품어왔다는 사라 수녀에게 지난 96년 무풀리라로 진출한 프란치스꼬 전교봉사 수녀회 소속 수녀들의 활동은 이런 결심을 더욱 굳히게 한 계기가 됐다. 「에이즈 환자촌」이나 다를 바 없는 컴파운드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사랑을 쏟아내는 수녀들의 삶이 곧 자신이 걸어야 할 길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에이즈로 부모를 잃고 실의에 빠져있던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를 때마다 잠비아의 미래가 밝아지는 것 같다는 사라 수녀는 자신이 하느님을 통해 먼저 배운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털어놓는다. 이런 생각 때문일까 아이들의 수가 불어나는 것이 그에게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
▲ 사라 수녀(오른쪽 끝)에게 고아원 아이들은 잠비아를 위한 새로운 희망이다
아픈 이들을 가까이서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는 사라 수녀는 자신과 같이 잠비아인 가운데서 성소자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털어놓는다. 하느님 나라가 더욱 넓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감내하기 힘든 죽음의 그늘을 헤쳐 나온 아이들이 자신들 가운데 사랑의 불을 밝힐 수 있도록 사랑의 불씨를 전해주십시오』
자신의 기원이 전해지도록 두 손을 모으는 사라 수녀의 모습에서 잠비아의 밝은 미래가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