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발표 및 지정토론
“평화 해치는 사회구조 고쳐야”
주제발표에 나선 유네스코 아태국제이해교육원 이삼열 원장은『지상의 평화를 만들려는 노력은 구약의 예언자로부터 신약의 사도들, 그리고 교부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교회의 전통』이라고 강조했다.
이원장은 『20세기 냉전시대에도 국가간의 전쟁은 국지전으로 억제될 수 있었으나 이라크 전쟁 등 21세기의 분쟁은 유엔안보리라는 견제장치마저 무력화시키는 등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라크전은 인류의 문명이 약육강식이라는 미개한 시대로 전락할 가능성마저 보여준다』고 말했다. 특히 이원장은 『정의와 사랑이 없는 평화는 「위장된 평화」』라고 역설하고 『한반도에 내재한 「위장된 평화」의 구조와 체계를 분석하는데서 문제해결의 출발점을 삼을 것』을 제안했다.
지정토론에 나선 한겨레신문 강태호 기자는 「부시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다자대화의 전망」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현 미국 행정부의 대북 인식과 정책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의 길을 열어놓을 수 있음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강기자는 『미국이나 한국정부도 북한의 「제네바 합의」 복귀를 해법으로 보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다자간의 대화의 틀을 만들어가는 것이 선택 가능한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그는 특히 현 정세 속에서는 미국이 이라크전쟁과 같은 선택을 북한에 대해서도 진행할 가능성은 적잖다 보고 오히려 이라크전으로 북핵 위기에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평화를 위한 제도적 차원의 모색에 나선 김형태 변호사는 『신앙인이면서도 정치나 현실로 나아가면 신앙과 실천을 별개로 보는 인식이 교회 내에 팽배해 있다』고 지적하고 『이로 인해 교회 안에서마저 평화를 불가능하게 하는 구조가 많이 있다』고 밝혔다.
김변호사는 ▲평화정신과 배치되는 헌법 조항 ▲정전협정 ▲불평등한 한미 상호방위조약 등은 평화를 불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구조라고 지적하고 이런 구조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또 그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가치관이 평화를 해치는 1차적이고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강조하고 『세계관이 다른 이들을 공격하는 근본주의적 가치관은 신앙의 핵심과도 배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종합토론
“북핵 인식 미국 시각에 치우쳐”
남북한간의 평화를 위한 내외부적 조건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이 이뤄진 이 자리에서는 북핵 문제를 둘러싼 정신적, 정치적 혼란이 남북한과 북미간 문제의 실체가 올바로 알려지지 않은데서 따른 오해에서 일어난 부분이 적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았다.
이삼열 원장은 『객관적으로 볼 때 현재의 북핵 위기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 제공 책임은 미 부시 행정부에 있음에도 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언론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원장은 또 94년 북미간에 체결된 「제네바 협정」에 포함된 ▲협정 체결 후 3개월 내 대북봉쇄 완화 ▲대사급 외교관계 체결 등의 내용을 소개하며 미국의 시각과 여론에 경도된 북핵위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지적했다.
특히 종합토론에서는 북핵 위기의 실체가 과장된 면이 적지 않다는 비판과 이에 대한 언론의 책임이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한양대 김용수 교수는 『현재 북한의 기술과 경제상황으로는 미국이 우려하는 핵개발이 이뤄질 가능성이 없음에도 미국에서 의도적으로 과장한 면이 있다』고 밝혔다. 김교수는 특히 『북한의 경제난을 이해하지 않고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하며 불신을 조장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문제』라고 역설했다.
토론 참석자들은 남북한이 상호 신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단 반세기를 끌어온 우리 사회의 문제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신뢰를 쌓아 올리기 위한 교류운동을 적극 펼쳐 나가는게 신자들의 몫임을 재확인했다. 나아가 신자들의 예언자적 역할을 위해서는 자신을 버릴 줄 아는 신앙적 결단이 요구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 김운회 주교의 정리인사말은 이날 행사의 결실을 잘 보여 준다.
『그리스도인은 평화는 가능하다는 확신과 신념 속에 살아야 한다. 서로의 눈을 마주 바라보고 상대방에게 평화를 비는 노력을 한다면 우리 사회와 세계에 평화가 온다고 확신한다』
■ 김수환 추기경 기조강연
진리·정의·사랑·자유 바탕 화해 협력으로 평화 다지자
▲ 기조강연하는 김수환 추기경
1962년 10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요한 23세는 첫 회기를 끝내고, 1963년 4월 11일 성목요일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발표했다. 모든 민족들의 평화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이 회칙은 가톨릭뿐만 아니라 「선의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최초의 메시지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또 그리스도교 교리의 근본요지를 재천명하면서도 다른 종교나 신념을 가진 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호소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회칙을 평가하면서 『지상의 평화는 모든 시대의 인류가 깊이 갈망하는 것으로써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질서를 충분히 존중할 때 비로소 회복될 수 있고 견고해진다』고 했다.
교황 요한 23세는 「지상의 평화」를 통해 단순히 평화를 호소하는 것만이 아니라 평화의 개념을 정의했다. 또 미국 독립선언과 프랑스혁명, 1948년에 선포된 유엔 인권선언을 통해서 확보한 기본인권에서 지나친 개인주의 성향을 완화하고 사회교리를 덧붙여 넣음으로써 인권을 더욱 정교하고 세련되게 정리했다.
사회회칙을 발표할 때 문헌의 대상을 교회 안으로 제한한 이전 교황들에 비해 「지상의 평화」는 교회 밖의 「선의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보내는 회칙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지상의 평화」는 가톨릭 사회회칙이 더 이상 교회와 신자들만을 위한 문헌이 아니라 일반 사회, 온 인류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고 진리를 명백하게 밝힌 최초의 회칙이라 할 수 있다.
요한 23세는 교회쇄신을 위해 교회의 문을 세계를 향해 활짝 열고 새 바람을 넣기 위해 공의회를 소집해 오랜 세월 전통을 고수해 온 묵은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복음에 바탕을 둔 새로운 모습의 교회를 지향하는 희망찬 새시대의 문을 연 교황으로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가톨릭신문」을 통해 회칙이 소개됐다. 요한 23세는 이 회칙에 대해 「1963년 부활 선물」로 구상된 것이라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반영하는 가톨릭교회의 세계적 목자로서 나의 영혼 가운데 불타는 소원의 서술』이라고 밝혔다.
63년 당시 국내에서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계층은 가톨릭대학생들이었다. 회칙이 발표되자 「대한가톨릭학생총연합회」는 같은 해 7월 제9차 전국대의원대회 주제를 「지상의 평화」 회칙으로 정하고 가톨릭학생으로서 지상의 평화를 이룩하는데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모색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요한 23세가 「지상의 평화」에서 밝힌 평화의 필수조건은 「진리, 정의, 사랑, 자유」이다. 이것은 인간정신의 4가지 기본 요구이다.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요한 23세가 제시한 진리, 정의, 사랑, 자유가 과연 우리의 기본가치관으로 정립되어 있는지 ▲남북의 정치 풍토.체제는 이런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 ▲우리의 평화 추구와 통일 염원에 이런 가치관이 분명하게 있는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북핵 문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초미의 관심사이면서도 그 해법을 확실히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남북간에 존재하는 엄청난 시각 및 가치관 차이를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북한의 선군정치(先軍政治) 체제만을 본다면 평화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공산주의자까지 감동시킨 요한 23세는 평화는 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진심으로 기도하며 평화의 길을 찾으면 우리에게도 평화는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름을 무엇이라고 붙이든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평화를 달성할 수 있는 길은 「화해와 협력」이다. 화해와 협력이 꾸준히 이어져 남북이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신뢰구축이 참으로 필요하다. 그리하여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 걸쳐 교류가 증진된다면 남북의 평화는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보다 깊은 의미의 인간애, 인간존엄과 기본권리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요한 바오로 2세가 말씀하신 대로 『평화의 문제는 인간존엄과 인권의 문제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기』때문이다. 동시에 기본적인 문제제기나 접근에는 슬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진리 정의 사랑 자유를 다시 강조하며 평화 실현을 위해 『모든 사람이 자신의 권리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도 인정한다면 진리가 평화를 이룩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성에 따라 행동하고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진다면 자유가 평화를 이룩하고 더욱 발전시킬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이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복음에서 말씀하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줄 안다면 평화는 분명 이룩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