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 알로! 알로∼』
어른키보다도 높게 자란 풀숲 사이에서 불쑥불쑥 뛰쳐나와 일행이 탄 차량이 사라질 때까지 목청을 높이며 손을 흔들어대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가운데 커다란 바람구멍이 생기는 듯하다.
무풀리라(Mufulira)의 프란치스꼬 전교봉사수녀회 수도원을 나서 다시 발길을 잡은 솔웨지교구 땀부(Ntambu)로 향한 500여km의 여정은 그렇게 일행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놓고 있었다.
도로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아스팔트도로조차 잠비아를 통틀어 하나 밖이어서 일행을 태운 미니버스는 선택의 여지없이 곳곳이 패여 좀체 속도를 낼 수 없는 저속도로(?)를 따라 잠비아 선교 최일선인 땀부를 향해 내달렸다.
희망의 표징들
일행을 실은 26인승 미니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땀부지역 75km 구간의 비포장도로로 접어들면서 맛본 체험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과 감동」이었다.
버스가 숲의 정적 한가운데를 내달렸음인지 숲에 가려 보이지도 않던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도로가로 달려 나와 환영한다는 뜻의 『알로! 알로!』를 외쳐댔다. 아이는 물론이고 어른까지 버스라야 태어나 처음 보는 이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땀부는 오지 중의 오지. 짧은 구간이지만 버스가 4시간을 달려야 할 정도로 거친 길은 이 지구상에 몇 남아있을 것 같지 않은 오지로 뚫린 유일한 문명의 통로요 희망의 끈이었다. 그나마 한국의 선교사들이 오솔길을 닦아 차 한대가 근근이 다닐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수녀회가 후원금을 모아 처음 마련한 미니버스는 땀부에 와닿은 새로운 희망의 표징인 셈이었다. 250여km나 떨어진 공소를 비롯해 20개의 공소가 널려 있다시피 한 강원도 크기의 땀부지역에서 미니버스는 아이들의 통학버스로, 환자들을 위한 구급차로, 주일에는 성당을 오가는 메신저 등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실어 나를 것이다.
도로는 상상키도 힘들고 오솔길도 없어 선교사들이 한번 공소나 주민을 방문하려면 밀림에서 야영할 각오로 나서야 하는 게 땀부의 선교생활이다.
이곳에서 아프기라도 하면 500km나 떨어진 도시까지 나가야 하기에 병은 주민들에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가장 가까운 병원이 145km나 떨어져 있어 옮기다 죽는 경우도 허다하다.
선교사 진출후 복음화율 15%
한국 선교사들이 진출한 이후 땀부 주민들의 삶은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 송충이나 쥐를 잡아먹거나 나무뿌리 등으로 연명하면서도 하루 한끼를 먹기 힘든 주민들에게 선교사들이 소개한 농사는 이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되고 있다.
97년 2월 서울대교구에서 파견된 유근복 신부가 주임으로 있는 「땀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미션」에 정미소가 들어서고 신용협동조합이 움틀 채비를 하면서 주민들 사이에는 처음으로 「유통」이란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주민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치고 교육의 필요성을 전하는 선교사들의 활동을 통해 땀부는 새롭게 깨어나고 있었다. 이런 선교사들의 활동 때문일까 초창기 4%에 머물던 주민들의 복음화율은 어느새 15%에 이르고 있다. 매일 아침 4∼10km를 걸어 미사에 참례하는 원주민 신자들의 모습에서 새희망이 읽힌다.
성 필립스성당 완공
지난 3월 30일 땀부 카피디에서는 이 마을이 생기고 처음일 성대한 잔치가 열렸다. 수녀회가 건립을 추진해온 성 필립스성당이 700여 주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300석 규모에 아름답게 꾸며진 대형건물을 처음 보기에 주민들 중 성당벽 페인트를 벗겨보는 이들도 있었다.
이날 성당을 찾은 원주민들 가운데는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봉헌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길을 나선 이들도 적지 않았다. 미사가 끝난 후 수녀회가 제공한 소 3마리와 60여마리의 닭도 주민들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주민들의 토속성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4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 어린이집과 수녀원도 함께 봉헌됐다. 미사 중 원주민들이 손수 마련한 옥수수, 감자, 땅콩, 닭, 염소 등을 바치는 봉헌예절은 하느님께 바쳐질 잠비아의 미래를 떠올리게 했다.
가정간호를 위해 나선 길은 탄식의 연속이었다. 병원이 있었으면 고칠 수 있었을 병도 주민들에게 너무도 큰 십자가를 지우고 있었다. 눈병을 방치하다 아예 눈이 멀어버린 노인, 부러진 뼈를 치료받지 못해 그대로 굳어버린 노파, 변변한 치료약이 없어 썩어 들어가는 피부를 보고만 있는 아이….
그래서 문외한이던 수녀들이 손수 120병상 규모의 병원을 짓기 위해 나섰다. 더 큰 문제는 진료와 수술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시설을 움직일 수 있는 전력이다. 현재 수녀원 운영에 이용하고 있는 태양열판으로는 엑스레이기 한대도 가동하기 힘들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인근의 강을 이용해 소규모 수력발전소를 세우는 일이다.
전기·자동차 수리도 직접
전기, 자동차 수리, 도로…. 한국에서는 의식치도 못할 최소한의 여건을 만들기 위해 수녀들은 손수 자동차 수리법을 배우고 도로를 내고 전기를 해결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요즘도 한국에서 약이 도착했다는 소문만 나면 어떻게 알았는지 죽어가는 환자를 들쳐 업고 이틀밤을 꼬박 걸어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보건소를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이들 때문에 수녀들이 몸소 나서 맨손으로 황토를 이겨 병원을 지을 흙벽돌을 찍어내고 망치로 바위를 깨뜨려 자갈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일손은 더디기만 하다.
『주민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그들이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며 하느님께서 우리들 가운데 살아계심을 깨닫습니다』
먼저 나누고 엶으로써 변할 것 같지 않던 주민들에게 하느님을 전하고 있는 선교사들, 어느새 주민들의 표정과 살갗을 닮아가는 그들을 통해 새로운 하느님나라가 열리고 있음이 보였다.
※도움주실 분=(02)773-0797∼8, 454-001401-02-201 우리은행
예금주 : 아프리카 잠비아 선교후원회(나 레오노라 수녀)
◆ 8년째 희망의 땅 일구는 하이디 수녀
“학교 세워 빈곤·에이즈 극복에 도움”
『10년 후 하느님나라의 한 부분이 되어있을 이 땅을 함께 그려 보았으면 합니다』
개신교 선교사들마저 혀를 내두르며 발길을 돌린 땅에서 8년째 희망의 텃밭을 일구고 있는 프란치스꼬 전교봉사수녀회 총원장 하이디 부라우크만(62) 수녀의 얼굴에서는 잠비아의 밝은 미래가 엿보인다. 눈앞에 놓인 난관도 하나의 과정일 뿐인지 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제가 첫발을 디뎠던 한국의 60년대 모습이 겹쳐 떠오르는 것은 웬일일까요』
하이디 수녀에게 잠비아는 지난 66년 그가 첫 대면한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당시의 한국은 잠비아보다 더 처참했다. 겨울이면 얼어 죽고 굶어죽어 나가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83년 수녀회를 창설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 한국사회의 변화를 누구 못지않게 가까이서 지켜본 그이기에 잠비아에서 선교사들이 맞닥뜨린 어려움도 하느님나라를 향한 하나의 과정으로 다가갈지 모른다.
하이디 수녀에게 잠비아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땅이다. 7살 때 처음으로 선교사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을 때 잠비아의 전신인 로디지아가 바로 그토록 그가 가고 싶어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대로 따를 뿐입니다』
하이디 수녀에게 한국과 잠비아는 다른 땅이 아니라 하느님나라의 한 영토일 따름이다. 그래서 그는 내년 4월 아예 잠비아로 터전을 옮겨 남은 삶을 이곳에서 불태울 생각이다.
그런 그이기에 당장의 고통보다는 일궈나갈 희망이 크게 와닿는 모양이다. 그간 수녀들의 강단으로 일궈낸 농장이며, 고아원, 보건소 등 모든 것이 하느님나라를 향해 가는「대장정」에서 캐낸 소중한 보석이기에 그에게는 이 보석을 갈고 닦을 협력자가 더욱 절실하다.
이런 생각에 그가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도 교육이다. 카피디에 어린이집을 연 것을 비롯해 여자고등학교를 세워 여성들을 가르칠 계획을 세운 것도 잠비아의 미래를 위해서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영혼마저 파괴하는 빈곤과 에이즈를 극복하는 길도 그는 교육에서 찾고 있다.
『살아서 잠비아의 미래를 보지 못하더라도…, 지금 희망의 씨앗 하나가 되는 것이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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