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재위 25년을 즈음해 발표한 이번 회칙 「교회와 성체」(Ecclesia de Eucharistia)는 성체성사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생동감 넘치는 시어(詩語)의 인용과 은유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깊은 영성적, 신학적, 사목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회칙은 다른 어떤 회칙들보다도 개인적인 영적 체험과 영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교황은 회칙 8항에서 사제와 주교로서, 교황으로서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미사를 거행한 기억을 회상하고 7항에서 매년 성 목요일에 발표하는 「사제들에게 보내는 서한」 대신에 이번 회칙을 반포한다고 설명했다.
반포 배경
교황이 성체성사에 관한 회칙을 반포한 이유에 대해서는 제6항에서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다. 『저는 대희년의 유산인 교서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와 성모님께 관한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 기도」(Rosarium Virginis Mariae)에 이어, 이 회칙을 발표함으로써 이러한 성찬례의 「놀라움」을 되살리고자 합니다』
교회는 『성체성사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게서 자신의 생명을 이끌어내고』 양식을 얻고 빛을 얻는다. 따라서 교황은 『모든 사람이 이를 새롭게 경험하도록 어찌 재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말한다.
회칙을 통해 성체성사의 「놀라움」을 되살리고자 하는 이유는 오늘날 성체성사에 대한 소홀함이나 그릇된 이해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교황은 회칙 10항에서 『공의회가 시작한 전례 쇄신은 신자들이 제대의 거룩한 희생 제사에 더욱 의식적이고 능동적으로, 또 충실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교황은 일부 지역에서 성체 조배 관습이 거의 사라지고 있으며 성체성사에 관한 혼란과 오류가 발생하고, 성체의 신비에 대한 이해가 극단적으로 축소되거나 직무 사제직의 필요성이 흐려지며 교회의 신앙 표현 원리에 어긋나는 성찬 관습에 빠져드는 일치 운동의 시도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교황은 이러한 다양한 문제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성찬례는 너무나도 큰 은총이어서 모호성이나 평가 절하를 용납할 수 없다』며 이번 회칙이 『용인할 수 없는 교리와 관습의 어두운 구름을 효과적으로 거둬내는데에 도움이 되어 성체성사가 그 찬란한 신비로 끊임없이 빛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주요 내용
성체성사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 다룬 이 회칙은 서론과 결론, 6개 장의 본문으로 구성돼 있으나 이전 회칙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짧은 78쪽 분량이다.
회칙은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희생을 통해 교회에 선사한 가장 위대한 은총의 선물로서 세상과 교회에 힘과 희망을 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다.
교황은 회칙에서 그리스도가 성체성사 안에 실제로 현존한다는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재확인하고 성체성사의 거행에서 직무 사제직의 중요성과 교회의 전례 규범이 지니는 의미를 강조한다.
회칙은 먼저 서론에서 교회가 성체성사에서 생명을 얻는다는 신비를 재확인하고 오늘날 이뤄지는 그릇된 이해와 관행을 지적하면서 회칙을 통해 그러한 잘못과 오류가 바로잡아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제1장 「신앙의 신비」에서는 희생 제사로서의 성찬례를 미사를 통해 성사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실체 변화」라는 매우 특별한 현존을 내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이는 신앙의 신비임을 확인하고 있다. 제2장 「교회를 세우는 성체성사」에서는 성찬례가 『교회를 자라나게 함으로써 인간 공동체를 건설한다』며 미사 밖에서 이뤄지는 성체 공경 또한 교회 생활에 매우 중요한 것임을 지적한다.
제3장 「성체성사와 교회의 사도 전래성」에서는 성찬례는 『성품성사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존재 이유』이며 직무 사제 외에는 어떠한 공동체에서도 성찬례를 거행할 수 없음을 확인함으로써 직무 사제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4장 「성찬례와 교회 친교」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근본 사상인 「친교의 교회론」을 상기시키면서 『성찬례는 교회 안에서 이루는 친교의 지고한 성사적 표현』으로서 『친교를 낳고 친교를 강화한다』고 말한다.
제5장 「성찬례 거행의 품위」에서는 교회 안에서 형성된 성찬례 거행에 있어 전례 규범의 충실한 준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마지막 제6장 「성체의 여인이신 마리아의 학교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성체성사의 제정 이전에 이미 성체 신앙을 실천했다며 『성모님께서는 온 생애를 통해 「성체의 여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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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회칙이란
교의.윤리.사회문제 주로 다룬 교황의 공적 교시
교황이나 교황청은 주요한 교회의 가르침들을 다양한 형식의 공식 문서로 반포한다.
교황 문서는 입법, 행정 행위에 따라서 헌장, 교황령, 교령, 선언, 자의 교서, 친서, 답서 등으로 나뉘고 사목적 차원에서는 회칙, 교황 교서, 교서.서한, 교황 권고, 권고, 담화, 연설, 강론, 훈화 등이 있다. 형식에 따라서는 칙서와 소칙서로 나뉜다.
그 중에서 회칙(Encyclica)은 전세계 교회를 대상으로 하는 교시의 회람 서한을 말하며 교황의 장엄한 형식으로 주교나 성직자들을 주로 대상으로 하나 이번에 반포된 「교회와 성체」는 모든 교회 구성원에게 보내는 서한이다.
회칙의 내용은 교의, 윤리, 사회 문제들을 주로 다루는데 교황의 공적 교시이지만 무류권의 성격은 아니다.
■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들
재위 25년…14번째 반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 재위 25년 동안 발표한 회칙은 모두 14개이다. 연대순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is), 1979, 교황 즉위 후 처음 반포한 회칙. 예수 그리스도와 그 구원 사업의 존엄성에 대한 문헌.
2. 「자비로우신 하느님」(Dives in Misericordia), 1980, 성부와 하느님 자비의 의미에 대한 문헌.
3.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 1981,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90주년을 맞아 반포한 것으로 노동자의 권리와 존엄성에 대한 사회적 가르침.
4. 「슬라브의 사도들」(Slavorum Apostoli), 1985, 성 치릴로와 메토디오의 1100주년을 맞아 동유럽 그리스도교 문화의 가치를 확인하는 내용.
5. 「주님과 생명의 수여자」(Dominum et Vivificantem), 1986, 교회와 세상의 삶에 있어서 성령의 현존에 대한 문헌.
6.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1987, 그리스도의 신비와 교회 안에서의 성모 마리아의 중요성과 역할을 다룬다.
7. 「사회적 관심」(Sollicitudo Rei Socialis), 1987, 두 번째 사회회칙으로 바오로 6세의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20주년 기념 문헌.
8. 「구세주의 사명」(Redemptoris Missio), 1991, 교회의 핵심적이고 항구한 계명으로서 복음 선포에 대한 문헌.
9. 「백주년」(Centesimus Annus), 1991, 세 번째 사회회칙으로 「새로운 사태」 100주년을 기념해 반포했으며 고안주의 몰락 이후의 사회 상황에 대해 분석했다.
10.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 1993, 윤리신학의 기초에 대한 최초의 교황 회칙.
11.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 1995, 낙태, 안락사, 배아 실험 등 인간 생명과 존엄성에 대한 위협을 다룬 문헌.
12. 「하나되게 하소서」(Ut Unum Sint), 1995, 그리스도교 일치 노력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
13.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 1998, 인간 이성과 신앙의 참된 관계와 의미에 대한 문헌.
14. 「교회와 성체」(Ecclesia de Eucharistia), 2003, 성체성사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문헌.
사진말 - 가장 위대한 선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회칙 '교회와 성체'에 사인하고 있다(왼쪽). 교황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희생을 통해 교회에 선사한 가장 위대한 은총의 선물이 성체성사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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