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 기슭, 거기에 앉아 /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다. /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 우리의 수금 걸어 놓고서. (시편 137, 1~2)
스웨덴 출신의 혼성 노래패 아바가 불러서 잘 알려진 시편의 구절은 고향을 잃고 바빌로니아에 끌려와서 살게 된 이스라엘 민족의 아픔을 노래한다. 바빌론 유배는 느부갓네살 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이다.
원래는 신의 발 받침대
바빌로니아는 원래 「신의 문」(bab-ili)이라는 뜻이다. 또 고대 도시의 한 복판에 지어진 바벨탑은 하늘과 지상이 통하는 스타게이트였다. 일찍이 바빌로니아에 터를 잡았던 수메르 인들은 높은 산이나 언덕마다 탑을 빼곡하게 올리면서 신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올 때 발을 내딛을 받침대로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바벨탑이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 구약의 예언자 다니엘도 이곳 바벨탑 그늘 아래로 자주 지나다녔을 것이다.
바벨탑을 목격한 사람은 또 있었다. 기원전 458년 바빌로니아를 방문한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네모반듯한 밑그림에 탑이 서 있었는데, 탑 위에 탑이 올라붙고, 그 위에 또 다른 탑이 올라붙는 식으로 모두 여덟 개의 탑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는데… 맨 꼭대기 탑 위에는 신전이 세워져 있었다』고 전한다(역사 I, 181~183). 모두 벽돌을 구워서 쌓은 탑이었고, 꼭대기의 신전은 지붕에다 파란 유약을 발라서 구운 기와와 황금을 씌워서 멀리서 도시로 들어서는 나그네의 눈을 눈부시게 했다고 한다.
창세기의 기록
바벨탑 이야기는 성서의 창세기에도 나온다.
『사람들은 동쪽에서 옮아오다가 시날 지방 한 들판에 이르러 거기 자리를 잡고 의논하였다. 「어서 벽돌을 빚어 불에 단단히 구워내자.」 이리하여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쓰게 되었다.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의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어놓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창세기 11, 2~9)
창세기의 기록은 야훼가 사람들의 말을 뒤섞는 바람에 도시를 세우는 일이 중단되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헤로도토스가 보았던 바벨탑은 창세기에 짓다 만 바벨탑과 같은 것이었을까? 이 문제는 쐐기글자로 씌어진 명판의 한 구절이 해독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신 바빌로니아 왕국의 나보폴라살 왕(B.C. 624~604년)이 남긴 기록이었다.
『그때 마르두크 신은 이미 낡아서 붕괴된 바벨탑을 다시 지으라고 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새 바벨탑은 바닥 돌이 지하세계의 심장에 닿고 탑 끝은 하늘을 찔러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헤로도토스가 보았던 탑은 원래 같은 자리에 있던 옛 바벨탑을 허물고 새로 지은 두 번째 바벨탑이 된다. 공사를 너무 크게 벌인 탓인지 나보폴로살 왕은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바벨탑 공사는 왕위를 계승한 아들 느부갓네살 왕(B.C. 604~562년)이 물려받는다. 그가 남긴 명판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나는 하늘과 어깨를 겨루는 에테메난키의 탑 끝을 올리는 공사에 착수했다』
여기서 에테메난키(E-te-men-an-ki)는 「하늘과 땅의 받침돌」이라는 뜻이니까, 바벨탑 공사는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한 코에 꿰는 인류 최대의 역사였던 셈이다.
기적의 건축, 반항의 건축
성서 언어학에서는 창세기의 기술 시점을 대략 기원전 440년께로 잡는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모세가 직접 창세기를 썼다고 본다면 바벨탑 이야기는 기원전 1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 모세가 바벨탑 이야기를 쓰면서 옛 기록을 다시 정리했다고 치면 더 까마득하게 올라가니까 창세기의 바벨탑은 기원전 1700년께 함무라비 대왕이 건립했다는 첫 바벨탑으로 보아도 좋다. 첫 바벨탑은 천년 넘게 세월을 버티다가 낡아서 허물어졌고, 기원전 600년께 같은 자리에 새 바벨탑이 지어진 뒤, 다시 150여 년이 지난 시점에 헤로도토스가 보았던 것이다.
기원전 597년 예루살렘의 함락과 더불어 낯선 타국 바빌로니아에 강제 이주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찍이 한 차례도 본 적이 없는 거대 도시의 풍경과 만난다. 인구 150만 명에다 18km가 넘는 성벽이 에워싼 철옹성 도시의 위용은 기껏해야 양이나 염소를 치며 빈 들의 우물을 찾아서 유목 생활을 하던 그들에게 신기루 같은 딴 세상의 풍경이었다. 또 고대 최고의 도시가 자랑하는 성역 한 복판에 들어선 바벨탑은 인간의 솜씨로 믿을 수 없는 기적의 건축이었다.
그러나 유다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37~98년)는 바벨탑을 「반항의 건축」이라고 규정한다. 인간이 바벨탑을 높이 쌓아올린 것은 만약 또 한 차례 대 홍수를 일으키더라도 안전하게 피신하려는 속셈이니, 인간의 꾀를 가지고 야훼의 분노를 벗어날 수 있다는 오만의 죄를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언자들이 즐겨 입에 담았던 「바빌로니아의 창녀」가 「도시 바빌로니아」를 겨냥한 말이었다니까, 자태가 사뭇 눈부셨다는 바벨탑은 마치 바람난 처녀 바빌로니아의 헤픈 치맛자락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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