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해석학의 창시자 가다머는 이해 문제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를 전해 줍니다. 가다머에 의하면 이해는 「전이해」(이해 지평과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됨)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지평」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지평이란 경계 내지 한계를 뜻하므로 이해 지평이란 어떤 것을 이해하는 테두리 범위 경계 한계를 뜻하는데, 이 이해 지평은 역사 속에서 영향을 받아 이미 (前) 형성된 이해입니다. 인간이 무엇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의 이해 지평 속에서 「그것이 그것으로서」 드러날 때 입니다.
여기서 의미 있는 사실은 이해 지평은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의 이해 지평은 다른 이해 지평 속으로 융해될 수 있고 지평 융해를 통해 전이해와 이해 지평은 확장되고 풍요로워 집니다. 물론 이해 지평은 다른 하나의 이해 지평 앞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고 저항합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은 자신이 무너지는 아픔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아픔을 딛고 자신을 개방할 때 그는 이전과는 다른 넉넉하고 풍요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해는 「대화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분의 이론입니다.
필자는 이 이론을 읽으면서 신앙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하느님과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뜻을 접고 자신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신앙함으로 그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의 부활을 확인시키면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는 발현사화입니다. 전반부를 보면 예수님은 의심을 품고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구운 생선을 제자들 앞에서 잡수십니다. 여기서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음식을 먹는 행위가 의도하는 바는 첫째 당신은 유령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행위요, 두 번째는 여기 나타난 당신이 제자들과 함께 지내고 십자가에 달리셨던 같은 예수라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납득시킴으로 당신의 부활을 확인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을 보면서 같이 묵상해 보고 싶은 점은 제자들의 변화입니다. 처음 이들은 예수님을 뵐 때, 놀랍고 무서워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의 손과 발의 상처를 본 후에는 기뻐하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아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으로 변화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성서를 깨닫게 하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자 이들은 자신들이 예수님 부활의 증언자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신앙이란 완성된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무엇이 아니라 「의심과 믿음」을 통해 풍요로워지는 무엇, 그리고 「나와 초월자와의 만남」을 통해 일정한 발전단계를 거쳐 성장하는 무엇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도들의 신앙이 어느 일순간에 얻어진 깨달음이라기보다는 3년간의 공생활 그리고 수난과 부활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한 신앙이라는 사실도 신앙 성장의 일면을 뒷받침합니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즉, 신앙이 성장하는 무엇이라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개방성입니다. 복음의 제자들이 주님의 발현과 그분의 말씀 앞에 자신을 개방하였듯이 우리도 외부에서 주어지는 증언에 먼저 자신을 개방해야 합니다. 성서의 증언과 교회의 가르침, 너의 신앙체험, 그리고 초월자와의 만남에 우리를 개방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합니다.
그리고 이 개방성을 보충하는 두 번째 자세는 수용성입니다.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고 나의 뜻과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다른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성이 있을 때 비로소 개방성은 의미를 가지게 되고 여기서 사도들과 같은 변화는 시작됩니다.
바로 「열려있음」과 「받아들임」이라는 이 두 가지 자세가 복음의 제자들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요, 이 둘이 서로 조화되고 순환될 때 여기서 변화와 발전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순환에는 본능적인 자기애와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이 깨어지는 아픔 등 여러 가지 장애물들이 우리를 방해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적으로 이러한 장애물을 넘어서는 「개방성」과 「수용성」을 가지려하고 가질 수 있을 때, 의심의 사람에서 부활의 증언자로 변한 사도들처럼 오늘의 우리도 더 큰 신앙의 삶으로 변화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