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긍정 혹은 부정의 문제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문제일 것이다.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왠지 속상한 마음에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으려면, 그리고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어, 그게 삶이야」 라는 무책임한 말을 마지막에 하지 않으려면, 하느님을 내 생의 중심에 모시고 과거와 현재의 순간을 바라보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럴 때에만, 그토록 꼬여있고 복잡하기만 하던 억울함과 고통의 순간들이 어느새 순한 눈동자를 하고 내게 화해를 청하고 있었음을 깨닫게되기 때문이다. 신앙만이 가능하게 하는 영혼과 삶에 대한 긍정인 것이다.
찬양시의 대표적 예
이러한 「하느님 중심주의」적 시각을 잘 드러내 주고 있는 시편이 바로 시편 8편이다. 지난주에 예고한 대로 이제 우리는 몇 가지 시편을 선택하여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시편 유형을 「찬양시」와 「탄식시」로 크게 구분했던 만큼, 각각의 대표적 예를 선택하여 접근하고자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선 필자가 찬양시의 대표적 예로 선택한 시편은 제8편이다. 이 시편은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나이까?』라는 유명한 구절과 함께 인간의 위대성을 부각시킨 시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시편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찬양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그토록 위대하게 하신 「하느님」임을 알게 된다.
즉, 시편 8편은 인간의 위대함을 부각시키는 「인간 중심주의」적 관점을 드러낸다기보다는 인간에게 존귀함을 부여하신 하느님께로 시선을 돌리는, 철저한 「하느님 중심주의」적 관점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구조를 통해본 핵심 주제
이러한 사실은 8편의 구조를 통해서도 더욱 잘 드러난다. 시편 8편이 사용한 문학 기법 중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인클루시오」(inclusio)라는 기법인데, 이는 처음 시작(2절, 머리글이 1절)과 맨 마지막 구절(10절)에 동일한 구문을 반복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이 시편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를 명징하게 부각시키는 테크닉을 말한다. 시편 8편이 맨 처음과 맨 끝에 반복함으로써 시편 전체를 감싸안고 있는 구절은 『야훼, 우리의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존엄하옵니까!』라는 구절이다. 야훼 하느님께 대한 찬양인 것이다.
시편 8편의 전체적 내용 전개를 보아도 이 시편이 철저히 하느님 중심주의적 관점을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데, 전반부인 2~5절에서 미리 「하느님의 존엄하심」을 강조함으로써, 후반부(6~10절) 내용인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존귀함」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느님께서 존귀하신 분이라는 점을 전반부에서 전면 부상시킴으로써, 「바로 그러한 이유로」 하느님은 인간에게 존귀함을 충분히 부여하실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후반부에 전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체계적인 구조를 통해 시편 8편은 1) 인간은 존귀하다는 것, 2) 그러나 이 존귀함은 일종의 수동적 특혜로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존귀함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나의 현재를 긍정하기 어려울 때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것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심각한 위기 의식일 것이다. 정체성 상실로 인한 이러한 위기는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라는 물음에서만이 정답을 찾을 수 있다. 내 삶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나는 그저 그분께 생명을 무상으로 선물 받은 특혜자일 뿐이라는, 하느님 중심적 자기 이해는 현재의 고통을 그다지 억울한 것으로만 느끼지 않게 한다. 하느님을 생의 중심에 두고 삶을 긍정하는 것, 가장 자신 있게 삶과 세상을 대하는 비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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