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등단 30년을 맞은 소설가 박범신(아우구스티노.57.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씨의 처녀 시집. 소설가란 이름으로 산 지 삼십 년. 시집을 엮은 건 처음이다.
박씨는 책의 자서(自序)에서 『작가 나이 이립(而立)의 서른을 자축하며, 더도 말고 오늘 하루, 나의 「시인」이 갑옷을 뚫고 나와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얼쑤절쑤 춤 한번 추고 가는 것,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지요』라고 적었다.
그런 만큼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에는 편안하고 여유로운 시들로 가득하다. 작가의 마음에 숲이 들어앉기도 하고, 햇빛 사이로 딱따구리가 울기도 한다.
천명에 기대어 나팔꽃이 꽃대를 올린다.
꽃, 달팽이에게, 뽕나무, 빈대, 산에게, 용인 굴암산, 산벚꽃 지는 날 등 제목에서 시가 씌어진 「한터산방」이 눈에 보일 듯하다.
「우리집 젊은 진돗개는 / 어쩌다 목줄 풀어주면 아주 미친다 / 나는 너무 반듯하다 / 사랑하는 그 누구도 나의 목줄을 풀어주는 일 없다 / 나는 혼자 있을 때, 아주 미친다」 (「작가」 전문).
〈박범신/문학동네/117쪽/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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